[농정춘추] 농민이 주도하는 농민기본법과 농업전망의 농정전환은 왜 다를까?

  • 입력 2022.01.30 18:00
  • 수정 2022.06.27 09:07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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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정책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2021년 12월 21일부터 한 달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진보당이 펼친 ‘농민기본법 국민입법청원운동’이 충족요건인 5만명을 달성해 국회에 상정될 절차만 남았다. 까다로운 개인인증과 동의절차 때문에 전자기기에 익숙지 않은 농촌에서 청원을 받기란 대학입시만큼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여농 회원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마을을 누비고, 지역사회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농업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등 절박한 심정으로 나섰기에 이뤄낸 성과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인력난과 이상기후로 거듭되는 농작물 재해를 겪으며, 농민들은 이대로 가다간 농업·농촌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체득했다. 그 위기의식이 청원을 달성시킨 힘이 아니었을까.

농민들은 개방농정을 근간으로 한 지금까지의 규모화·고투입·기업농육성 방식으로는 더 이상 농촌이 유지될 수 없음을 깨닫고, 농정틀의 근본적인 변화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19일과 20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22’ 행사가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향후 대한민국 농업정책의 흐름과 농산물 가격예측정보 등을 알 수 있는 행사라 기대가 컸다. 대표 슬로건도 ‘농업·농촌, 새 희망을 보다’였다.

새 희망! 그래, 맨날 위기니 소멸이니 얘기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겼다. 하지만, 분과별 토론내용은 과연 시대의 흐름과 농민의 절박함을 인지하고나 있는 건지 실망스러웠다.

시대전환과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을 얘기하면서 해법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재인정부가 추구한 스마트농업, 저탄소 농업기술에 기반한 탄소중립의 기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간 수많은 농업예산은 농민들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규모화농업과 시설농업 증가에 발맞춰 기업들의 배만 부르게 하고 농민들은 빚쟁이로 전락시켰음을 잘 알고 있다.

‘농업전망 2022’에서는 애그테크라는 이름의 스마트팜, 자동화 로봇, 실내 수직농장, 바이오차, 메탄 저감 사료 등이 농업분야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농촌의 인력을 대신할 로봇과 드론의 활용은 보기에 멋지지만, 투자 대비 생산비도 안 나오는 농산물값으로 어떻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인지 농촌 현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기후위기가 심각해 탄소배출을 대폭 감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때에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의 대책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으니 오히려 지구 전체로 보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의 대안에 농업을 책임지고 있는 주체인 농민이 없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얘기하는 중소농 육성과 생태농업으로의 전환, 경축순환농법 등의 지역자원순환 시스템, 농장에서 식탁까지 먹거리전략, 식량자급력 확보를 통한 탄소 감축 정책 등은 전부 어딜 가고 여전히 기업에 의존한 채 외부자원을 투입하는 방식만 고집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대책만 난무할 뿐 현장 농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들은 농민들에게 ‘환경보호 실천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언제 농민들에게 가격이나 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는가. 언제나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던 게 농민이다. 정부가 충분히 인센티브를 주며, 실현 가능한 정책을 내밀면 언제든 변화하는 게 순진한 농민들이다. 아니 이제는 나아가 농민들도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공익적 역할을 더 잘할 테니 국가는 이에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라고, 농민수당을 요구하고 농민기본법을 만들자 나서고 있다.

농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취급하고, 시장경제에 내맡기는 기본원리에 기초한 현재의「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으로는 농촌소멸도 기후위기도 극복할 수 없다. 이제 식량과 농지를 공공재로 바라보고, 농업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식량주권도, 국민의 먹거리기본권도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을 폐기하고,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농업, 농촌, 농민기본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지금도 농촌마을 곳곳에서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사라지는 농지를 지키려는 농민들의 가슴 아픈 투쟁들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지만, 농업전망 2022에서는 식량자급률에 대한 위기의식도, RCEP, CPTPP에 따른 농업피해 상황이나 대책들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의 농업·농민 무시 정책이 농업 감수성 낮은 농정관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임을 묻고 싶다.

이제 국회라도 농민기본법 제정에 책임 있게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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