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없어 농사 줄이는데, 정부는 상시고용 보험 가입 ‘의무화’

고용노동부, ‘고용허가 발급요건 강화’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농민들 “필요 인정하나 부담 가중” 우려 … 보험 실효성 논란도

  • 입력 2022.01.30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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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고용노동부가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 발급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농민들로부터 농업인안전보험 가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전북 김제시 광활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두둑 위에 씨감자를 두 줄로 놓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고용노동부가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 발급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농민들로부터 농업인안전보험 가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전북 김제시 광활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두둑 위에 씨감자를 두 줄로 놓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사 안 짓는 게 돈 버는 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최악의 인력난을 겪고 있는 농촌 현장서 차라리 농사를 포기하는 게 소득 면에서 손해를 안 보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고용노동부(장관 안경덕)는 최근 고용허가 발급요건을 강화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농가 숨통을 옥죈다는 비난을 직면하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24일 ‘산재보험에 임의가입하거나 산재보험과 유사한 농·어업인안전보험 등에 가입할 것을 확약해야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그간 농·어업 분야 5인 미만 개인 사업장은 산재보험법 적용에서 제외돼 보험 가입을 않고도 고용허가서 발급이 가능했지만, 개정령안 공포·시행 이후부턴 농·어업인안전보험 가입 확약서를 반드시 제출해야만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시행령 개정 추진 이유는 농업 분야 재해율이 타 산업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산업 재해율은 0.54%인데 반해 농업 재해율은 0.78%고, 농업 부문 5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은 1.22%에 달한다.

한편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2020년 이후, 외국인노동자 입국 제한 등의 여파로 농촌 인력 수급에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됐다. 그에 따라 농촌 인건비 역시 연일 고점을 경신 중이며, 일부 품목 농산물 가격마저 하락세를 지속하자 아예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인력난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노동자를 1년 내내 상시 고용하던 시설 재배 농가의 운영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시설 채소를 재배하며 2~3명의 인력을 상시 고용하던 농민 오용진씨는 입국 제한의 여파로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할 수조차 없게 됐다.

오용진씨는 “인력풀 자체가 크게 줄었고 상시고용이 불가능해지다 보니 일부 가족들이 일손을 거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마저도 일손이 한정돼 있다 보니 그에 맞춰 농사 규모를 대폭 줄인 농가도 주변에 많다”라며 “일반적으로 외국인노동자에게 들어가는 한 달 인건비만 1인당 220~230만원에 달하는데, 여기서 농업인안전보험 가입까지 의무화한다고 하면 농가 입장에선 부담해야 할 인건비 명목의 생산비가 더 늘어나게 되는 거다. 생산비가 증가한 만큼 농산물 가격이 오른다면 혹 모르겠으나 최근 시장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현실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건 전형적인 탁상행정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오 씨는 “어떤 의도인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농민들도 농업인안전보험 가입을 꺼리는 상황에서 무작정 고용허가 시 안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게 무슨 소용일지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농업인안전보험, 실효성 ‘의문’

강원도 춘천시에서 방울토마토 시설하우스를 운영 중인 농민 이재환(67)씨 역시 해당 개정령안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농업인안전보험의 실효성 때문이다.

이씨는 “춘천에는 시설하우스를 크게 하는 농가가 많고 하우스 면적이 2,000평 이상이면 적어도 2명 이상 상시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고용 인력을 위해 농업인안전보험을 가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용주조차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라며 “보험에 가입해도 농작업과의 인과성을 밝히기 어려워 보상을 받는 경우가 적고 보험금 자체도 작다 보니 보험 가입이 의미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또 매년 갱신해야 하므로 가입 필요성을 대부분 못 느껴 주변서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게 농업인안전보험 가입 농가다”라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지난해 2월 농업인안전보험의 개선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보고서는 “농업인안전보험은 ‘대다수 농업인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신체적·재산적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보험’이지만 농업인안전보험의 급여 수준은 산재보험보다 전반적으로 낮고, 1년마다 재가입해야 하는 방식도 보장 기간이나 보험가입심사 등과 관련해 농가에 불리한 요소가 되고 있다. 농가의 보험 가입 주저 요인을 줄여가는 동시에, 보험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보장의 범위를 확대하고 그 수준을 제고할 수 있도록 보험을 개선해야 한다”며 “보험유형 또는 상품을 더욱 다양화하고 농업 부문 인력 운용 특성을 고려해 가입단위도 ‘농장형’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농작업 관련 질병의 인정기준도 보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인안전보험 등을 포함한 농업재해보험의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관련 예산은 지난해 약 568억원에서 올해 577억원으로 소폭 상승했으며, 농식품부 관계자에 따르면 예산 집행률은 100%에 가깝다. 보험료 지원대상은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농업인’에 국한되지만, 고용주가 외국인노동자를 농업경영체에 ‘경영주 외 농업인’으로 등록할 경우 마찬가지로 보험료의 50%를 보조받을 수 있다는 게 농식품부 측 설명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농민들은 “실효성 부실한 농업인안전보험 가입만 독려할 게 아니라 농촌 인력 수급 현황을 제대로 되짚고 관련 대책부터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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