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쓰고 싶다

  • 입력 2022.01.30 18: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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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정부가 설 성수기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하루에 트럭 10대씩 배추 비축물량을 방출하고 있다. “물가 잡는다고 하다가 농민 잡게 생겼다”며 호소하던 농민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취재를 시작했으나 곧 피로도가 높아졌다. 농식품부나 aT, 기재부 등에 전화했을 때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보든 돌아오는 대답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쪽 사정도 고역이겠으나 나도 이런 일로 전화 좀 그만하고 싶다. 선배들이 들으면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기사 쓰는 것이 벌써 질려버린 것 같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졌다, 정부 대책이 시급하다’는 기사들, 정말이지 그만 쓰고 싶다.

한편 정부는 매해「시장접근물량 증량에 관한 규칙」을 일부 개정하면서 팥·녹두 등의 TRQ 물량을 수입해 오고 있었다. 이 문제로 통화할 때도 물가안정과 원활한 수급을 위해서였다는 동일한 말이 여러 사람의 입에서 되풀이됐다.

물가안정, 산지폐기, 수입확대… 이런 단어들도 그만 마주하고 싶지만 일은 해야 하니 한차례 심호흡을 한 후 전화를 걸고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받아적는다. 나와 마찬가지로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돈을 바라보며 일하고 있을 공무원들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도시에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시골에서 농사짓는 농민들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그들이 반복해서 말하는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또는 수입 농산물로, 자연재해로, 중간 상인의 횡포로, 깜깜이 출하로 매달 매년 소득이 불안정하고, 정부 비축물량이라는 쓰나미를 정통으로 맞은 배추 생산 농민들처럼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정산받는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농정공약이 하나둘 발표되고 있다. 이번에는 한 번 기대를 걸어봐도 될까? 후보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산지가 긴급하다’, ‘정부 대책이 절실하다’, ‘수입을 멈춰달라’ 같은 기사를 언제까지 써야 할까. 이제 그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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