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비축물량 하루에 50톤씩 방출 ··· 시름 깊은 농민들

  • 입력 2022.01.30 18: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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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배추 비축물량을 대거 방출해 농민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국내 대표적인 월동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배추를 수확해 망에 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배추 비축물량을 대거 방출해 농민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국내 대표적인 월동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배추를 수확해 망에 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가 배추 비축물량을 대거 방출하면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약 1,000톤의 배추가 시장에 방출됐다. 이에 따라 배추 도매가격은 6,000~ 7,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27일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배추 평균가는 7,168원이다. 유통 전문가들과 농민들에 따르면 농사를 지속하기 위해선 최소 9,000원대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

저장 배추가 시장에 풀리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 가지 큰 문제는 정부에서 마련한 수급조절매뉴얼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에 정한 수급조절매뉴얼은 품목별로 위기단계를 정하고 그에 맞는 수급정책을 명시하고 있다.

매뉴얼은 도매가격(가락시장 상품 경락평균가격)을 적용해 단계별 경계값을 설정하고 있는데, 겨울배추(1~4월)의 위기단계별 가격(10kg)은 주의(9,128원), 경계(1만755원), 심각(1만4,362원)으로 나눠진다.

수급조절매뉴얼에 따르면 농산물 가격이 올랐을 때 주의단계의 경우 국내외 수급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경계단계에 이르렀을 땐 상시비축물량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경계단계가 3일 이상 지속되면 비축물량을 방출할 수 있는데, 배추가격이 주의단계나 그 이하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약 한 달 동안 상당한 물량이 방출돼왔던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 관계자는 “작년 말에 겨울배추 주산지인 해남의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내려갔다. 한파가 닥쳐 작업이 불가능했고 이에 따라 가락시장 배추 물량이 줄어서 12월 25~26일경부터 방출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사장 김춘진, aT)는 “이달 10일부터 현재까지 하루에 50톤씩 약 800톤이 방출됐으며, 설 물가안정이 중요함에 따라 평상시보다 비축물량을 확대 방출하고 있다”라며 “월동기 배추 주산지 공급물량이 충분하지 않아 부득이 정부 수매 비축물량을 방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락시장에서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정한 수급매뉴얼이 있지만 지표대로 하나도 안 지킨다. 언론에서 비싸다고 하면 무조건 풀어버리는 식이다. 원래 가격이 많이 올라가면 수급조절위원회를 개최해서 매뉴얼대로 결정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주의단계에서 풀어버렸다”라며 “가격이 오르면 물가안정을 이유로 평균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팔아버리는데 반대로 가격이 하락했을 때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물가안정을 명분 삼아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하락시키고 있다. 정부에서 방출하는 만큼 농가소득이 감소하는 것이다”라며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가격이 이 정도면 더 비중이 많은 중품, 하품의 경우 완전 적자다. 수익도 안 나는데 누가 농사짓겠나. 아무런 대책 없이 물가만 잡는다고 이렇게 많이 풀어버리면 농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배 대아청과 기획경영팀장은 “언론에서 ‘배추가격이 전년보다 몇 퍼센트 올랐다’는 식의 기사들을 보도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지금 상품 가격이 원가보다 싸거나 근접한 시세인데도 언론에서 비싸다고 해버리면 아무리 안 비싸다고 얘기해봤자 누가 알아듣겠나”라며 “출하자 입장에선 배추가격이 9,000원은 나와야 하는데 소비가 없어서 가격이 오르지 않고 있다. 현재 배추 가격이 7,000원대까지 떨어졌는데 최소한 이 상태에서 비축물량을 더 풀라고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급매뉴얼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고, 실제 방출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은 한파 같은 기상 상황이나 가격이 어떤지, 평년에 비해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등 전체적으로 검토한 후에 여러 가지를 반영해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현재 배추가 완전 성수기는 아니지만 설 대목을 앞두고 기본적인 소비가 있어서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이번주까지는 방출할 계획이고, 그 후에는 더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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