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지역 자치력은 공론화와 거버넌스로 성장한다

  • 입력 2022.01.23 18:00
  • 기자명 박진숙(전남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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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숙(전남 곡성)
박진숙(전남 곡성)

풍광 좋기로 유명한 죽곡면 두어 곳 마을과 인근 오곡면에 걸쳐있는 주부산~통점재 산등성이에 풍력발전기 10기를 세우기 위해 1,300억원 규모의 사업이 들어올 것이라는 얘기로 동네가 술렁거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부터였다.

지역의 작은 건설업체를 앞세운 토건세력은 국가전략사업이라며 마을을 드나들며 협박과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대관령으로 영덕으로 맛집 투어와 관광을 몇 차례 시켜주면서 우리 지역도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동네가 되도록 해주겠다는 청사진을 보여주기도 했고 지역발전기금을 약속하며 마을주민들의 도장을 차곡차곡 받아내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한 주민자치회는 운영위를 열어 풍력발전기 설치문제를 정기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지역발전과 재생에너지정책을 내세운 찬성의견과, 산림훼손과 공동체 갈등, 건강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반대의견이 오갔고 다양한 논의 후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로 결정하였다.

입장이 결정되자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지역의 농민회와 청년회, 이장단, 새마을지도자회, 내가 관장으로 있는 죽곡열린도서관까지 모두가 나서서 현수막을 걸고 반대서명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주민자치회가 나서주어서 고맙다는 어른들의 응원과 우리가 주체가 되어 우리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자부심은 죽곡면의 자치역량을 한껏 끌어올려 주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지금 느닷없이 주민의견 수렴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며 풍력발전 얘기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고, 주민자치회 대화방에도 이런저런 의견들이 제기되어 운영위 안건으로 또다시 오르게 되었는데, 상황은 전과 다르게 진행되어갔다.

행정의 미묘한 태도 변화에 눈치를 보기도 하고, 해당 마을(죽곡면 반송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엔 지역공동체의 갈등만 야기할 수 있으니 위원들 개별 선택에 맡기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역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서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게 주민자치회의 중요 역할임을 강조하는 위원들도 있었지만 분위기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며칠 전 죽곡문화유산탐사대 활동의 일환으로 카메라를 들고 문제의 반송마을에 가게 되었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설 주부산은 쪽빛 하늘과 맞닿은 팔을 길게 뻗어 동네를 감싸듯 품었고, 마을 어르신들은 따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분위기가 익을 무렵 풍력발전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동네에 돈도 주고 관광지로 되면 젊은사람들 살길을 찾아주지 않겠는가’, ‘늙은 우리들은 귀가 먹어서 풍력 소음도 견딜만할 것’이라는 농 섞인 말씀들을 하신다. 곧이어 ‘환경이고 소음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냄새나서 못살겠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몇 달 전 동네 소규모 돈사가 기업형 축산인에게 매도가 되었고, 규모가 커진 돈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악취와 폐수에 지역주민들은 두통과 불면증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군에 민원을 넣고 돈사 앞에서 항의를 해봐도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주민들이 택한 해결책이 풍력발전이라 했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오면 소음으로 돼지도 잘 자라지 못할테니 돈사는 폐업하지 않겠냐는 어른들의 말에 슬픈 웃음을 지었다.

농촌마을은 대규모 축사와 폐기물 처리장 등과의 오랜 싸움에 이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재생에너지 정책과의 또다른 싸움에 내몰리고 있다. 농지를 덮어버리는 태양광발전과 산림을 훼손하는 에너지기업들의 무분별한 농촌 난개발에 농촌지역 공동체는 휘청거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지역소멸 위기에 시급하게 대응하기 위해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하고 국고보조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하고 인구감소지역지원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

당장 몇 사람 인구를 유입시킬까의 단기적 고민보다는 농촌의 현실을 살피고,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가 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당사자인 자치단체와 행정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고민하고 협업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한다면 지역의 자치력 성장과 더불어 지역공동체의 지속가능성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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