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38] 진정한 농부와 농촌

  • 입력 2022.01.23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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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며칠 전 서울에 사는 4살배기 어린 손녀와 놀다가 문득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별 기대 없이 물었는데 대뜸 ‘농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라고 다시 물었더니 “농장에 가서 딸기도 따 먹고, 고구마도 캐 먹고, 옥수수도 먹어 봐서 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손녀의 눈에 비친 것처럼 농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농지원부(농지대장)도 있고, 경영체 등록도 했으며, 지역농협 조합원이기도 하고, 친환경 유기농 인증도 받은 데다 소액이나마 친환경 자조금도 내기 때문이다. 서류상으로는 틀림없는 소위 ‘농업인(농민)’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진정한 농민일까. 평생 도시에 살다가 농사지으며 농촌 인근 지역에 내려와 살고 있기는 하나,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이나 농민들은 아직도 ‘농부’로 봐주는데 인색하다.

당연하다. 내가 생각해도 진정한 농부라 보기는 좀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농사지어 번 돈은 지난 6년간 몇백만원에 불과하다. 농업소득을 기반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농촌 마을에서 매일 농민들과 피부를 맞대고 살지도 못한다. 농촌 지역을 시·군 ·면 단위로 넓게 본다면 농촌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볼 수는 있으나, 농민들이 대다수인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최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는 대선 농정 공약을 준비하고 있고, 농민단체들도 이런저런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 농정이라는 것이 주지하다시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해결하고 총체적인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농정분야 공약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아마도 공익직불금을 어떻게 확대할 것이며, 지자체 차원에서 촉발된 농민수당과 달리 중앙 정부 차원의 농민기본소득 또는 농촌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공익직불금의 확대와 농민기본소득, 나아가서 농촌기본소득의 점진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예산의 확보고, 진짜 농민과 진짜 농촌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예산은 현재 농림축산식품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 부처(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에서 집행하는 농업·농촌·지역·농민·농촌주민 대상 각종 직불금 및 보조사업을 통합·조정해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예산을 줄여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현재의 농식품부 예산 16조원을 향후 5년간 점진적으로 두 배 가까이 늘리도록 해야 한다.

또한 농민의 정의와 농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하루속히 정립하고 제도화해야 하며, 직불금이나 기본소득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손녀만 인정하는 나 같은 농부가 직불금이나 기본소득 지급 대상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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