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코로나에 주저앉은 일상

  • 입력 2022.01.16 18:00
  • 기자명 박효정(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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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경남 거창)
박효정(경남 거창)

‘마스크!’ 아침마다 학교와 유치원으로 나서는 아이들에게 확인하는 말이다. 가방을 메고 가듯 마스크를 쓰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었으며, 17개월 막내도 밖에 나갈 때면 마스크를 껴달라고 입과 귀 사이에 손을 댄다. 상상도 못했던 일상이다.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 코로나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첫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지만 입학식 없이 집에서 EBS 방송을 보며 1학기를 보낸 후, 2학기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교를 갔다. 하교 후에도 예전 같으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어둑해질 때쯤 마지못해 집으로 왔을 텐데 지금은 거리두기가 기본이기에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아이를 지금 바로 데리고 가세요!’ 얼마 전 일이다. 작은 시골 학교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어 오전 학교 돌봄교실과 오후 태권도 학원을 다니던 아이는 집에서 격리 생활을 시작하며, 그야말로 진짜 방학을 맞이하였다. 농한기였으니 다행이지, 만약 10여일간의 격리 기간이 파종기나 수확기와 맞물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밀접접촉자’가 된 아이와 동반 격리를 거치며, 밥 짓고 돌아서면 또 다음 먹거리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아이는 방구석에서 시를 쓰며 놀았다. ‘행복, 불행으로 바꾸고/ 좋은 삶, 좋지 않은 삶으로 바꾸고/ 병 없이 있던 사람, 병 있게 만든 코로나19/ 2022년엔 없으면 좋겠네.’ 아이는 학교를 안 가도 되고, 태권도 심사가 미뤄지니 즐겁고 신난다고 좋아했지만, 이 모든 것이 불행하고 좋지 않다고도 표현했다. 엄마인 나도 그랬다.

농사짓는 엄마로서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안전하고 흙이 비옥하도록 밭과 가정을 일구는데 애면글면했지만, 이상기후와 코로나에 어떻게 작물과 아이를 무탈하게 키워낼지 뿌리부터 흔들리는 위기의식으로 방향성을 모색해야 했다.

가족농과 소농으로 밭에서만큼은 코로나를 걱정하지 않았고, 마스크를 안 쓰고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갓난아이를 돌보는 입장에서 코로나를 마주하니 흙먼지 휘날리던 위생관념이 보다 철저해지고, ‘제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던 방임형 양육 태도도 예민하게 변하고 있었다. 최대한 동선을 줄이고, 집과 밭 위주의 단순한 삶이 강화되었다.

작물은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환경에 따라 저항성이 달라진다. 관행농에서 병충해에 시달렸으나 자연농을 몇 해 거치며 흙이 살아나고 작물 나름의 힘이 생겨 병충해를 덜 타는 등 씨앗의 특성 발현과 품질 차이가 났지만, 난데없는 이상기후에 작물의 저항성 범위를 그냥 뛰어넘기도 했다. 본디부터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고 했다. ‘아프다’는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면역력을 길러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아프고 나면 쑥 컸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가 아프면 긴장의 연속이다. 전염병의 여지로 혹여 주위에 다른 이들에게 심각한 민폐를 끼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공적 돌봄의 최소한의 역할마저 부재한 상황을 겪으며 더욱 부담스러워졌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코로나에 유치원이나 학교 등 공적 돌봄이 불안정해지자 엄마가 아이들을 직접 보육하는 비중이 급증하면서 여성들의 경력 단절과 경제력이 198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했다고 하는데, 나에게도 꼼짝없이 각박한 현실이었다.

개별 가정으로 전가된 돌봄의 양도 버겁지만, 그 양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엄마들 저마다 고군분투하는 글을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여성들이 가진 능력이나 재능과 별개로 과중된 육아·가사로 마음에 답답함과 우울감, 죄책감을 토로하는 내용도 많았다.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어려운 도시를 떠나 귀농·귀촌하는 경우가 확산되고 있으며 농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가중된 여성농민의 노동과 뒷걸음질 친 경제력의 문제에 대해서는 주목하는 이가 적다. 전통적으로 여성농민에게 기울어진 돌봄 노동의 무게가 더욱 심화되고 고착됨을 경계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눈을 크게 뜬다면 진정한 위드코로나 문화가 농촌에서 보다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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