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⑩] 대장간 옆 남원오일장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 입력 2022.01.16 18:00
  • 수정 2022.01.17 05:06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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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눈앞의 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고,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오히려 멀리 있는 오일장들이 더 근사해 보여서 내 시선은 자꾸 멀리 있는 오일장들에 멈춰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날도 춥고 백신 접종 후 체력도 급격히 떨어진 것 같고 하여 선택한 장이 남원오일장이었다. 그렇다고 처음 간 곳은 아니다. 교육이 있어 가기도 했고 아주 가끔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잠깐씩 들러보기는 했어도 이번처럼 아예 작정을 하고 장엘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너무 기대치가 낮아서였는지 아무리 추워서 발이 시려도 장을 떠나고 싶지 않게 재미졌다.

남원의 오일장은 2개의 주차장과 8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상설시장의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과 그 외곽을 둘러싸고 열린다. 다른 곳들과 비슷하게 상설시장 안은 썰렁하고 추위와 바람에 노출된 난전은 북적대는 모습이었다. 전통시장을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개성과 다양성이 무시된 건축물로 만들어 놓은 안목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투덜대며 지나다녔다. 하지만 그 투덜댐을 상쇄시킬 재미와 흥미가 오일장에 있으므로 안타까운 마음을 잊을 수 있었다.

남원오일장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다른 오일장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에 더해 남원의 특산품인 목기가 있고, 지리산을 품고 있는 도시에 있으니 지리산의 약초들이 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남원식도(칼)가 있다. 칼바람이 부는 1월의 남원오일장에서 가장 눈에 많이 보이는 것은 시금치였다. 아무래도 겨울 찬바람 맞아 한창 단맛이 오른 시금치가 제철인 때라 그럴 것이다. 시금치 옆에는 봄동, 그 옆엔 물미역과 파래 등이 식욕을 자극한다. 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좋은 식재료를 만나면 발동하는 병이다. 참고 시금치만 한 바구니 사들고 발걸음은 계속 장을 돌고 돈다.

 

채소 좌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제철을 맞은 시금치다.
채소 좌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제철을 맞은 시금치다.

 

시금치가 이 시기 채소전의 대세라면, 어물전의 주력은 홍합, 굴 등이다.
시금치가 이 시기 채소전의 대세라면, 어물전의 주력은 홍합, 굴 등이다.

 

남원오일장도 채소전들과 생선전들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분리되어 있다. 가게마다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해산물들을 늘어놓는데, 이 계절엔 배를 가르고 좌판에 누워있는 아구들과 홍합, 꼬막, 굴이 대세다. 같이 장에 나간 사람들과 해서 먹을 아귀 한 마리와 시금치랑 조리해 먹으려고 홍합을 좀 사고 장을 떠나려 했지만 의외의 장소에서 발이 묶였다.

상설시장 앞에 주차를 한 관계로 시장 건물들을 가로질러 나오다가 튀밥집을 만났다. 올망졸망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올망졸망 모여 앉은 튀밥 재료들이 저마다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쌀튀밥의 재료인 산더미처럼 쌓인 쌀들은 신동진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주인에게 물으니 신동진이 아니면 튀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신동진은 쌀알이 장군처럼 커서 밥을 해놓으면 그 위용이 대단한데 튀밥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50년을 지켜온 튀밥집을 끝으로 오일장을 벗어나 추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추어탕집에서 걸어도 좋은 거리에 식도로 유명한 부흥식도 판매장이 있어서 칼 한 자루 사고 싶어 들렀다. 주말에는 판매장 구석의 간이 대장간에서 담금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대장간엘 들렀다. 72세의 여자 대장장이 담금질을 해서 식칼을 만드는 곳이다. 농기구 등을 만드는 대장간은 있지만 직접 담금질을 해서 칼을 만드는 곳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한 곳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분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빛난다. 대장간에서 칼을 한 자루 선물로 받았다. 칼은 그냥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며 동전 한 개라도 받고 선물을 하는데, ‘악귀는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전 한 개라도 받는 이유는 칼로 무를 자르듯 사람의 관계가 끊어질 것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다. 새해벽두에 칼을 선물로 받았으니 선물한 사람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악귀는 물러가고 복이 올 것이니 참 좋다. 이제부터 살아낼 1년이 다복할 것이라니 정말 좋다.

남원오일장에 오시려거든 칼도 한 자루 사시고 대장간에도 다녀가시라고 권한다.

 

올해 72세의 여자 대장장이가 담금질을 이어가는 ‘부흥식도’는 남원오일장의 명물이다

 

'신동진'벼를 써야 맛좋은 튀밥이 나온다며 강조하던 오일장 입구의 튀밥집.
'신동진'벼를 써야 맛좋은 튀밥이 나온다며 강조하던 오일장 입구의 튀밥집.

 

남원공설시장의 입구.
남원공설시장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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