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목포-제주 바닷길② 60년대 제주행 연락선엔 누가 탔을까

  • 입력 2021.12.26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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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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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관광여행’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귀에 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민들 대부분의 당면과제가 굶주림과 헐벗음을 벗어나는 것이었으니, 누군가에게 구경삼아 어딜 간다고 얘기하면 단박에 “팔자 늘어졌네”라는 비아냥 섞인 대꾸가 건너오기 일쑤였다.

오늘날 국내 관광여행지를 순위로 매길 때 부동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제주도 역시, 당시엔 관광지로의 개발이 거의 안 돼 있었다. 개발이 안 돼 있기로는, 제주로 향하는 해상교통의 관문이라 할 목포항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수심의 높낮이가 좀 커요. 6미터 가까이나 되거든요. 그러니까 60년대 당시엔 바지(barge)하고 도교(渡橋)를 띄워서 높낮이를 맞춘 다음에 선박을 접안하게 했지요.”

목포-제주 간을 운항하는 여객선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박준영 씨는 당시 목포항의 실상을 이렇게 설명하는데, 어째 말이 좀 어렵다. 풀어서 얘기하면 이렇다.

조수간만의 차가 6미터에 달했기 때문에, 썰물 때에는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먼 바다 쪽으로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다리를 물위에 띄우고, 그 도교(혹은 부교) 끝에다 바지선을 연결해서, 그 곳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렸다는 얘기다. 당시만 해도 목포의 상징인 삼학도가 육지와 연결되지 않고 바다에 떠 있던 시절이다.

물론 당시에도 목포와 제주를 정기적으로 왕래하는 배가 있었다. 화물선을 개조한 철선 ‘화양호’와 목선 ‘항영호’가 그것이었다. 목포에서 제주까지 무려 12시간이나 걸렸지만, 새우젓을 실은 돛단배가 항구를 드나들던 시기였던지라, 그나마 제주행 연락선은 항구에서 가장 규모가 번듯한 기선(機船)이었다.

연락선의 출발시각이 임박했다. 2층 선장실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구수한 유행가 가락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서둘러 배에 오른다.

-자, 표 끊은 사람들은 빨리빨리 올라타시요이! 이 고무신 보따리 누구 거요? 아지메! 보따리 갖고 타야제!

-어이, 거그 소주독 운반하는 사람들 조심해! 술독은 쌀가마니 실은 다음에 실으랑께 그라네!

“쌀이 화물의 90%를 차지했고 술도 많이 실어 날랐지요. 당시엔 유리병에 담아 파는 소주가 아직 생산이 안 됐을 때라 정종을 옹기로 만든 독에 담아서 운송했지요. 또 목포에 신발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신발들도….”

그 시기에 제주 나들이를 했던 사람들은 주로 상인들이었다. 예나 이제나 제주도에서는 쌀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선적하는 화물 중에서 당연히 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당시엔 제주도에 공산품 생산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으므로, 각종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고기 잡는 어업도구들까지도 바로 그 연락선을 통해서 공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 제주행 여객선에 몸을 실은 승객들 중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헌병이 호루라기를 불며 한 무리의 남자들을 이끌고 부교(浮橋)를 건너온다.

-똑바로 일렬로 서서 이동하지 못해! 저기 맨 뒤에 자꾸 뒤돌아보는 사람 누구야! 너희들은 제주도로 귀양 가는 게 아니라, 국토건설의 역군으로 건너가는 거야!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만28세 이상의 병역미필자를 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이른바 ‘국토건설단’을 조직했고, 그들 중 일부를 제주도로 데리고 가서는 18개월 동안이나 강제노역을 시켰는데, 그들 역시 목포항을 통해 수송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강제 노역에 징발된 사람들이 세칭 ‘5.16도로’라고 불리는 한라산횡단도로를 건설하였고, 그것이 제주도 관광개발의 토대가 되었다. 승용차로 그 도로를 지날 때면 그들의 희생을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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