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 입력 2021.12.26 18:00
  • 기자명 이한보름(경북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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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보름(경북 포항)
이한보름(경북 포항)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과 폭발적인 경제성장은 축산물 소비 증가로 이어졌고 관련 산업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육우의 사육마릿수는 2021년 9월 기준 약 358만마리며 농장당 사육마릿수는 38마리로 약 9만개의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돼지의 경우 같은해 기준 1,209만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약 6,000개의 농장이 운영되고 있어 농장당 사육마릿수가 2,000두를 넘어서고 있다. 낙농농가(약 6,000호)와 양계농가(약 2,400호) 역시 일정 규모 이상으로 규모화를 이루어 농촌 경제를 이끌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국가의 축산 정책은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농가 수익을 실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농가를 유도하였다. 그 결과 양돈은 우리의 주식인 쌀과 함께 농업분야 총생산 1, 2위를 다투고 있고 한우가 3위를 차지함으로써 농촌 경제에 없어서 안 될 중요한 산업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로 인해 축산업에 신규로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문제와 규모화에 따른 냄새 발생으로 주변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신규 진입은 물론 기존 농가의 정당한 영업행위조차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 축산의 현실이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환경을 앞세워 각종 규제를 쏟아내고 있고, 우리 축산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은 그 어느 곳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축산업의 규모화는 농가의 수익을 증가시켰지만 다양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축산에서도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이용한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으로 축산물을 생산해 왔고, 이에 따라 생산자는 농장의 규모화를 이루었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축산물을 양껏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 간의 교역이 증가하게 되면서 소비자의 선택지는 더 늘어났고, 그에 발맞춰 생산자들 역시 축산 선진국의 다양한 생산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효율성 증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만큼의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규모화를 통해 잃은 것은 비단 품종의 다양성만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축산업이 발전할 가능성을 잃음과 동시에 관련 종사 인구의 감소를 불러왔고 농촌인구 감소와도 연결되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산업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며, 총생산액 대비 산업의 위상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발등을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시대는 바뀌었고,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다. 생산성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과거와 달리 윤리적 소비나 사회적 소비 등의 슬로건을 내건 물건들이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과거에는 협동조합이나 재래시장에 의존해서 판매망을 확보해야 했다면 이제는 소셜미디어라는 강력한 홍보·판매 수단이 있다. 전기자동차가 길거리를 다니고 민간인들이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에 우리 축산 농가들은 언제까지 과거에 머물러 살 것인가?

이제는 다양한 품종의 사육을 장려하고, 소규모 농가를 육성하여 축산업의 신규 진입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축산업 인구 증가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축산업의 규모를 달성 못한 농가에 대체 선택지가 될 것이며 동시에 작은 규모로도 적절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산업의 규모화와 획일화의 부작용은 축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교육, 문화, 산업 전반의 문제였다. 가난한 나라가 짧은 시간동안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시대도 환경도 바뀌었다. 다음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가 아닌 우리 내부로부터 축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넓혀봐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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