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 철학 부재가 키운 실패

  • 입력 2021.12.26 18:00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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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하면서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실종됐다. 농촌현장에서는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수확의 기쁨을 만끽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계속되는 쌀값 하락으로 오늘도 농민들은 아스팔트 위에 서야만 했다. 들녘이 아닌 아스팔트 위에 설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현실은 올해에도 여전히 나아진 것이 없었다.

지금 현장은 쌀값 하락세에 긴장하고 있다. 쌀 생산량에 비해 수요량이 부족하게 되면 시행해야 할 시장격리 조치가 미뤄지면서 쌀값이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직불제도가 전면개편되면서 쌀변동직불제가 폐지됐고 쌀값 하락에 대한 안전장치도 사라지게 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약속한 것이 양곡관리법에 근거해 쌀 초과생산량이 신곡 수요량의 3% 이상인 경우 매입한다는 규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매입 시기인 10~12월을 넘기면서 철석같이 정부 약속을 믿던 농민들을 기만했다.

연말에 쌀값 문제가 농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면 상반기에는 농지투기 문제, 농촌인력 부족 문제 등이 농업 현장의 현실을 암울하게 만들었다. 농사짓는 농민이 농지를 소유·이용하며 농지를 보전하는 방향보다 농지를 불로소득의 도구로 이용하는 등 훼손하는 세상이 됐다. 올해 농정에서뿐만아니라 전 사회적으로도 크게 이슈가 됐던 것이 부동산 문제며 바로 농지투기 사건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지구 내 농지투기는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사유재산 운운하며 뒷짐 지고 있던 기관과 정치인에게 농지투기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인식시켰다. 그러나 잠시 폭풍을 피하는 수준의 조치만 남기는 데 그쳤다.

1996년 농지법이 시행된 이후 농지보전의 방향성에서 멀어져 가며 개정을 거듭해 왔던 농지법은 농지제도가 너덜너덜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정부는 LH 투기 사태에서 경각심을 갖고 농지제도를 제대로 정비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보여주기식 개정에 그치고 말았다. 농지제도의 핵심인 비농민 농지 소유의 문제, 농지 전수조사 등에 대한 현장의 요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며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농지 문제는 농촌지역에 집중되는 신재생에너지사업, 각종 산업폐기물 처리시설 등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영농형태양광’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농지를 잠식하며 농업생산의 고유기능보다 농지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인식케 했다. 농산물 가격보장이 안 되니 태양광 설치로 농가소득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절반이 넘는 임차농을 무시하며 수입농산물로 먹거리만 제공하면 아무 문제 없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최근 쌀값이 하락하는 추세에서 정부가 시장격리를 외면하는 것이나 농지전용으로 사라지고 있는 농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하는 것, 농업의 가장 필수 조건인 농민을 육성하는 역할을 소홀히 한 점 등 평가받아야 할 사안이 차고 넘친다. 심각한 농업노동력 부족문제는 고스란히 생산비 상승에 반영되며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물은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작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태가 이어진다면 농민들이 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만 가중된다. 이번 정권은 농정에 대한 철학 부재로 농민·농업·농촌의 소중함을 망각하며 외면했다는 점에서 크나큰 실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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