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⑨] 12월의 통영이 온전히 담긴 통영오일장

  • 입력 2021.12.19 18:19
  • 수정 2022.01.14 10:21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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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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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오일장은 중앙전통시장, 중앙활어시장, 통영활어시장이 어우러진 거대한 시장의 외곽을 둘러싸고 길가에 늘어선다. 오일장이 서지 않는 날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거리는 상설시장의 가장자리 도로변에서 오일마다 서는 장이 소박하기 짝이 없다.

어떤 오일장은 상설시장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쯤 되면 통영의 오일장은 꽤 쓸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일장이 없어질 만도 한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신기할 정도이다. 그나마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건 오일장을 따라 걷다 보면 벽화로 유명한 동피랑마을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통영의 오일장은 상설시장과 하나로 어우러져 그 모두가 다 통영오일장이라고 불러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

통영의 오일장으로 목적지를 정했지만 사실 나는 관광객들로 가득한 상설시장과 결합된 오일장보다는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까지 서는 서호시장의 새벽시장을 보러 가는 재미가 더 좋다. 통영에 가는 날은 그래서 좀 더 분주하게 움직이게 된다. 전국의 그 어떤 시장보다 마른 생선을 파는 곳이든 선어나 활어를 파는 곳 모두 깨끗하게 진열이 되어 있고 지나친 호객으로 손님들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 적다.

아침 일찍 움직여 왔으니 속이 비고 한기도 들 때쯤이면 시장 안 곳곳에 있는 밥집을 찾는다. 꽤나 알려진 음식점도 있지만 그 어떤 음식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도 먹을만 하다. 시락국을 파는 집, 복지리를 파는 집, 제철을 맞은 생선을 주제로 백반을 파는 집들이 있다. 물론 김밥집도 있고 잔치국수집도 있지만 우리는 졸복으로 끓인 맑은탕을 아침으로 먹고 다시 시장을 돌아본다.

오늘은 주머니를 단단히 동여매고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왔지만 내 팔뚝보다 큰 대구들을 보니 마음이 동한다. 마수도 못했다며 자꾸 사라고 하시니 이리가 듬뿍 든 수놈으로 한 마리 잡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100% 자신한다며 대구를 잡았지만 알이 한가득 든 암놈이다. 새로 잡아준다더니 알은 따로 두고 미리 빼놓은 이리를 함께 담아 준다.

같은 대구라도 알이 가득 든 암놈의 살보다는 수놈의 살이 더 많고 맛있기에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 첫 거래라 꾹 참는다. 아마 내 뒤통수에다 대고 도시 사람 속였다며 좋아라 할 수도 있겠지만 추운데 고생하시니 바보처럼 내가 참는 그 속을 알아주지 않아도 뭐 괜찮다.

통영의 오일장은 중앙전통시장, 중앙활어시장, 통영활어시장이 어우러진 거대한 시장의 외곽을 둘러싸고 길가에 늘어선다. 도로변에 서는 오일장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통영의 오일장은 중앙전통시장, 중앙활어시장, 통영활어시장이 어우러진 거대한 시장의 외곽을 둘러싸고 길가에 늘어선다. 도로변에 서는 오일장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새벽시장이 서는 서호시장과 조금 늦게 오일장이 시작되는 중앙시장은 거리상 아주 가깝다. 운동 삼아 걸어도 될 정도의 거리다. 서호시장은 건너편에 여객선터미널 주차장을 같이 사용할 수 있지만 중앙시장은 주차장이 먼 거리에 있어 약간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통영활어시장은 비를 가릴 지붕이 없는 난전이다. 그래도 통영에선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3개의 상설시장과 결합된 통영오일장을 천천히 돌아보면 12월의 통영은 온통 굴과 물메기와 대구 세상인 것 같다. 그리고 맛이 들기 시작한 시금치와 물김, 톳, 파래, 물미역들이 주를 이루는 시장이다. 물론 아직도 푸른 밭작물들이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통영은 해산물의 천국이다.

3개의 상설시장과 결합된 거대한 통영의 오일장(?) 양 옆으로는 통영의 특산물인 꿀빵집과 충무김밥집이 늘어서 있다. 어디가 원조인지 최초인지 알 수 없지만 맛은 모두가 거기서 거기다. 다 다른 것 같지만 많이 비슷하고 조금씩만 다르다. 오늘은 그 많은 가게들을 지나치면서 맛도 보지 않고 귀가를 서두른다. 손에 든 대구의 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닷물에 여러 번 씻어 건져 담겨온 대구살을 이리와 분리해서 민물에 다시 씻은 후 소금간을 살짝 해놓는다. 이리와 아가미, 위는 따로 씻어 건져 놓는다. 무를 큼직하게 썰어 물을 넉넉히 붓고 끓인다. 무가 거의 익을 무렵 대구살과 아가미, 위를 넣고 다시 끓인다.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이리를 마지막으로 넣고 대파와 마늘, 매운 고추로 마무리한다. 물론 간은 오로지 소금이다. 맑게 끓던 대구탕이 이리가 들어가자 뽀얘지고 마치 곰국 같은 느낌이 난다. 굴깍두기 한 사발과 밥상을 차린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자 12월의 통영이 넘실대며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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