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 실현, ‘지금 당장!’

  • 입력 2021.12.19 18:00
  • 기자명 정영이(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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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이(전남 구례)
정영이(전남 구례)

현장 여성농민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2019년에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촌여성정책팀이 신설되었다. 이후 여성농업인 역량강화, 여성농업인이 행복한 농촌 조성, 농촌·농업분야 양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일 년 열두 달 딱히 농한기가 없이 여러 가지 농사를 짓고 있는 필자가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변화는 마을과 여성농민들에게 미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농촌형 성평등 강사단 양성교육’이고 두 번째는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교육’, 세 번째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사업’이다.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며 지리산자락 아래 오래된 미래 같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오며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남성 주도, 남성 중심의 문화와 풍토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견디기 힘든 사례가 많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도 청년 여성농민들이 몇몇 귀농을 해왔지만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사례에 직면할 때마다 어떻게 대응할까? 순식간에 회오리치듯 머리를 굴린다. 딱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으면 지극히 소극적인 말 몇 마디를 하고 말 뿐이었다. 마을의 어머니들 또한 평생을 살아오시며 변화를 위한 고민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작년부터 시작된 ‘농촌형 성평등 강사단 양성교육’은 필자에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농식품부 공동주관으로 ‘농촌형 성평등 강사단 양성교육’을 한다는 공지를 보고 쉽지 않은 첨부 증빙서류와 학습계획서 등을 작성하여 수강생으로 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해로 인해 일이 많아지고 농사일까지 하면서 정해진 강의와 과제 등을 수행하기가 버거워 아쉽게도 과정 중반을 넘기고 중도에 포기를 해야 했다. 다행히 올해 다시 과정이 개설되어 작심을 하고 재도전을 했다. 만만치 않은 과정을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바로 어제 최종 위촉이 되었다는 공지를 받았다.

작년과 올해, 강사단 교육을 이수하며 현장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내가 발 딛고 선 주변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정리를 하게 됐다. 그 출발을 농촌여성정책팀이 농정원을 통해 진행하는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교육’과 연계해보자는데 생각이 미쳤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에서 교육총괄 역할을 하기로 하고 신청을 했다. 다행히 교육운영기관으로 선정되어 전남지역 120개 마을로 찾아가는 여성농민 교육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구례에서는 2개면 25개 마을 교육을 진행했다.

대통령, 도지사, 군수도 다 내 손으로 뽑는데 마을이장 선거 때는 투표권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사업을 한다니 “나도 꼭 검사 받을란다” 하시고,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영농도우미 지원사업이 있는지도 몰라서 혜택도 못 받았고, “작년까지 동네 사람들이랑 행복바우처 카드로 머리하러 같이 미용실에 갔는데 올해는 75세가 넘었다고 나만 쏙 빠져서 같이 못 가니 속상해 죽것어.” 마을마다 신박한 말씀들로 농사박사처럼 쏟아내는 여성농민들의 얘기는 하나하나 정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가을걷이가 막바지이고 김장철에 무슨 교육이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이런 교육을 진작에 했어야지 다 늙어빠져 부렀는디 왜 이제야 왔느냐”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모이신 분들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여성농민들이고 종종 아흔이 넘은 분들도 참여하셨는데 요양병원에 가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만 있으면 자그마한 텃밭에서라도 농사를 짓고 있는 분들이었다. 굽은 허리는 보행유모차에 의지하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온갖 곡식들과 먹거리를 생산하는 여성농민들. “내 살아평생에 여성농민이라고 교육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여”라는 말씀에서 지금까지의 농업정책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살아왔는지를 단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허술한 공동경영주 제도의 문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고령의 여성농민들을 돌아보고 ‘지금 당장’ 실현해야 할 정책은 무엇인지 실천 가능한 대안을 지역에서부터 모색하고 가능하도록 만들어 내는 일. 성평등한 농촌사회,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사회로 가는 길이리라. 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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