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지막 기회

  • 입력 2021.12.05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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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첫째는 잉여량은 100% 다 격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추수 이전에 격리를 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선행되지 않고는 쌀값이 하락했을 때 반등시킬 안전장치가 없습니다.”

2019년 11월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 3차 회의에 올라온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김종회 전 의원이 김현권 전 의원의 ‘자동시장격리’에 동의하며 수차례 강조했던 내용이다. 매우 안타깝게도, 우려는 법안 통과 이후 불과 두 번째 수확기 만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나타나고 말았다.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농민들의 의견을 받아 주장했던 바와 같이 수요 초과물량 전체를 격리하자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의원들은 조건에 따라 격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되새겨야 할 사실은, 변동직불제를 대신해 이 당시 마련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빈말로도 ‘안전장치’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장치가 처음 알려진 것처럼 지금도 소위 ‘자동시장격리제’라고 불리고 있지만, 실제 법에 쓰인 건 김현권 의원이 주장했던 ‘자동’ 시장격리가 아니다. 개정된 양곡관리법과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시장격리는 분명 구체적 발동 조건을 동반하고 있으나 이 조치를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농림축산식품부의 행보는 어쨌거나 ‘법대로’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해도 농민들을 제대로 우롱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당시 국회, 특히 여당과 정부는 이것이 가격안정을 위한 확실한 대체재라며 농민들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안의 내용이 조금 부족하다 한들, 설마 목표가격까지 삭제한 마당에 이를 스스로 사문화하리라고는 누구도 쉬이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농업을 중히 여긴다며 공익직불제를 만들고 양곡관리법을 고쳤다. 농식품부가 양곡수급안정대책의 수립기한(10월 15일)을 지키지 않고 한 차례 미뤘을 때, 이들은 쏟아지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잘못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대선이 다가올 즈음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민들이 이 경악스런 언행불일치를 잊지 않을 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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