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 안전의 사회적 보장

  • 입력 2021.12.05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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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강건너 동네 범띠 형님네에 볏가마 몇 개 사러 갔다. 논농사를 그만두니 쌀을 사먹어야 되는데 기왕이면 도정기가 있으니 벼를 구해서 방아 찧어 먹을 요량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형님이 “야 니가 실어 올려. 난 못해” 한다. 노인네 같이 구부정하게 서서 말이다.

사연을 들어 보니 오른팔에 테니스 ‘엘보’가 왔다. 봄농사 때부터란다. 병원에는 다녔다는데 계속 팔을 쓰니 더 심각해졌고 꼭 해야 될 일들은 이웃 젊은 동생들 도움으로 겨우겨우 하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엄마가 좀 도와 주실거 아녀?” “엄마도 무릎 수술해서 지금 재활치료 중이셔.” 아이고야! 동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잔 하며 위로가 조금이라도 될까 수다를 평소보다 더 열심히 떨었다. 그래봤자 동네 농사짓는 형수들(실은 다 할매들) 중에 수술 안한 사람 없다, 다른 형님들도 무릎에 허리에 어깨에 팔에… 뭐 그런 이야기들.

3년 전에 나도 허리가 꽤 심각했었다. 그해 딸기가 잘 돼서다. 구부정한 자세나 쪼그려 앉은 자세로 300평 딸기를 3개월 가량 따다 보니 내 허리가 남의 허리가 돼버렸다. 작년과 올봄에는 딸기를 망쳤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허리가 편해져 있었다. 농사란 게 자기 살을 내주며 돈을 만들어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인 거라.

주변에서 농사짓다가 다치고 몸 어디가 상했다는 경우는 셀 수가 없다. 다치는 건 연장이나 농기계, 그리고 추락. 몸 상하는 건 주로 허리, 무릎, 고관절, 어깨, 팔꿈치. 손발 저림이나 만성 근육통 같은 것들은 명함 내밀기도 뭐한 종류다. 내가 아프고 다치는 것보다 주변 형님, 형수님들, 동생들한테 일이 생길 때 속이 더 상한다. 뭐 대책이 없을까 항상 고민되지만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 이상은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7~8년 전에 농업인재해보험이 생겼다는 소식에 너무 반가웠다. 그 소식은 농협을 통해 듣게 된다. 정부 보조금도 있는데 보조금 소진되면 혜택을 못 받으니 빨리 매장을 방문해 가입하시라고. 10여년 전 예초기 날에 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1,000여만원 까먹은 적이 있어서 얼른 가입을 했고 해마다 가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별 영양가는 없다. 보조금이 제한되어 있고 혜택도 기본적으로 입원을 해야 받게 되는 거라 어디 한 군데라도 부러지지 않으면 무소용이다. 농사꾼들이 웬만하면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니 통원 치료로 때우려고 하는데 일일 치료비가 얼마 이상이 돼야 그 중 얼마를 보상해주고 더군다나 한의원은 안된다 하고.

소문이 나고 농협이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니 연초에 깜빡하다 보면 보조금 혜택을 못 받고 개인 부담으로만 드는 경우도 생겼고.

그래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구해다가 공부 비슷하게 해봤다. 국가적 차원으로다가 농민들 안전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만들면 안되나 싶어서 말이다. 몇 개 보지는 못했으나 놀라운 건 농업계의 재해율이 10% 정도로 전체 산업 평균 5% 보다 두 배란 것.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에 반해 농민들 보험 가입률이 50%대 중반 정도란 것. 위험도는 광업, 건설업에 이어 3위(한양대 의대 직업환경교실 이수진 교수, <우리나라 농업인의 농작업재해 현황과 보상 체계>). 제도가 허술한 게 큰 원인일 것이다.

그래도 대안이 될 수 있어 보이는 내용은 ‘농업인의 안전을 공적 사회보험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내용이다(국회입법조사처 김규호 입법조사관, <농업 부문의 사회보장과제: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이슈의 적용 과제>). 와! 농업에 산재보험이라니! 세세한 내용까지 보지 않고 제목만 봐도 느낌이 확 온다. 보험상품 취급하는 농협을 욕할 게 아니라 국가에 사회보장적 관점의 체계를 요구하는 게 맞겠구나 싶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용을 보며 찬찬히 생각해 보니 쉽게 되지는 않아 보인다. 대부분 농민들은 일종의 자영업자이고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농사가 뭐 다 그렇지’ 하는 생각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모든 농업문제 해결에 시큰둥한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쉽게 움직일까 싶기도 하다. 농민단체들이 이 내용을 고민하고 있다는 농업계 신문들 기사를 본듯만듯 하고.

뭐 그래도 이야기 할 건 이야기를 하는게 맞다. 여보쇼 나랏님. 내 허리 좀 어떻게 해주쇼. 국민 먹거리 생산 더 열심히 해볼 테니.

이 글 쓰는데 강건너 형이 마실 왔다.

“팔은 좀 어때?” “어, 요새 며칠 팔을 안쓰니까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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