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손실은 직원이 갹출” 농협·축협의 ‘이상한’ 문화

사건사고 은폐 습관화에

전근대적 조직문화 여전

  • 입력 2021.11.28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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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사고나 비리로 인한 회사(조합)의 손실을 직원들이 갹출해 메우는 ‘이상한’ 사례가 유독 농협에서 속출하고 있다. 일반적인 회사와 다른 농협의 ‘이상한’ 조직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충남지역 한 축협에서 미환전 지역상품권 3억4,000만원어치를 환전이 끝난 지역상품권과 함께 실수로 폐기한 사건이 이슈화됐다. 사건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조합의 대응이 더 가관이다. 관련부서 직원 6명에게 각각 5,000만원씩을 대출받아 손실을 메우라고 지시한 것이다. 물론 직원의 실수가 원인이지만, 사건의 은폐를 위해 정상적인 수습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임의로 ‘연좌 책임’을 강요한 것이다.

지난달 말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전북지역 한 농협에서 직원이 농약대금 ‘깡’을 통해 8억여원을 횡령했는데, 역시 공론화하지 않은 채 해당 직원과 농약업체에게 배상을 요구했고, 더 나아가 직원 ‘자율모금’ 운동을 통해 전 직원에게 손실금을 갹출시켰다. 말은 자율이라지만 위계질서가 강력한 농협의 구조상 강제성이 짙으며 실제로 직급별 모금액까지 할당한 정황이 포착됐다. 앞선 사례의 경우 관련부서 직원에 한하기라도 했지만 이 사례는 전 직원 단위의 연좌제가 발동된 것이다.

일반적인 사고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유형의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게 한 달새 벌써 두 건이고, 두 건이 다 농협이다.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개운치 않은 모양새다. 일선 농협 직원들로 구성된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전협노)은 농협의 그릇된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필연적 사건이라 분석한다.

임기응 전협노 정책국장은 “조합의 사건·사고가 외부로 알려지게 되면 조합 임원들, 특히 선출직인 조합장의 입지가 불안해진다. 조합 이미지·경쟁력 실추를 앞세우지만 결국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은폐하려는 것이고 농협 특유의 전근대적 조직문화가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을 발상하고 수용하게 한다”고 진단했다.

또한 “비슷한 사례가 공공연한 비밀로 많이 존재한다. 이번처럼 용기 있는 사람에 의해 이슈화될 때 잠깐 드러나지만 잠잠해지면 재발한다. 이슈화가 됐을 때 발본색원해야 하는데 결국 농협중앙회도 조합장들 편이라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직원 갹출 사건 외에도 전국 농·축협엔 위계에 의한 성폭력, 주관적 직원해임·조합원정리, 임원의 학연·지연에 의한 부실업무 등 일반적인 회사라면 군부독재 시절에나 횡행했을 후진적 문화와 그로 인한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은폐에 성공한 사례를 제외하고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만 따져도 부지기수며 본지 한 곳에 쏟아지는 비리 제보만 한 해에 수십건에 달한다. 변해가는 우리 사회는 지역농협과 농협중앙회의 이같은 모습을 점점 더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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