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⑧] 삭느라 버텨온 시간의 맛, 강경오일장

  • 입력 2021.11.21 18:00
  • 수정 2021.11.21 20:22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강하구둑으로 뱃길이 막혀 강경장의 명성은 예전만 못하지만, 젓갈시장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오래전 강경은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대규모의 파시가 열리던 큰 포구였고 육로가 거미줄처럼 얽히며 전국을 오가기 전까지는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장이 강경장이었다고 한다. 황석어, 꼴뚜기, 갈치 등 팔다가 남은 것으로 담은 젓갈과 여러 가지 새우젓이 발달해 젓갈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하지만 금강하구둑의 설치로 뱃길마저 막혀 지금은 그저 작은 시골의 쇠락한 시장이 되었다. 그나마 막힌 뱃길에도 불구하고 산지의 생선들을 육로로 들여와 여전히 젓갈을 담아 파는 젓갈시장이 건재한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는 않고 있는 곳이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오일장은 대흥시장에서 시작해 강경천을 끼고 강경젓갈시장과 연결된다. 강경의 특산물로 자리를 잡은 젓갈가게가 119개소라고 대흥시장의 안내판에서 안내되고 있으니 그 규모가 참으로 대단하다. 시장 안에 촘촘히 이어져 있던 가게들에서 호객을 하던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독립된 건물에서 제법 거리를 두고 산재해 있으니 그야말로 젓갈마을, 혹은 젓갈거리라 말해도 좋은 모습으로 변모를 했다. 매년 10월에 김장철을 겨냥한 젓갈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내가 갔던 11월에도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은 남아 있었다. 내년에는 축제 기간에 한 번 와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강경오일장의 시작점 '대흥재래시장'의 입구.

 

먼저 젓갈시장을 차로 한 바퀴 대충 돌고는 대흥시장 주차장에 차를 두고 시장 건물 안을 걷는다. 두 눈이 좌우로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발길을 멈추고 지갑을 열 뭔가는 보이지 않는다. 이른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미 규모가 줄어든 시장은 안타까운 마음만 생기게 만든다. 밖으로 나가 거리에 면한 가게들과 노점상들이 늘어선 곳을 아주 천천히 걷는다. 세상의 모든 오일장에 꼭 있는 주전부리상들이 있고 텃밭의 채소들을 조금씩 들고나온 어르신들이 자리하고 계신다.

제법 쌀쌀한 날이었기로 동행들과 같이 뜨끈한 국물을 먹을 수 있는 어묵을 한 꼬치씩 먹는다. 그러면서 반죽을 들고나와 떡, 소시지, 치즈 등을 넣고 즉석에서 튀기고 있는 주인장과 시장 얘기도 듣고 너스레를 떤다. 건너편 생선전에 생새우가 보이기로 김장할 양을 가늠해 산다. 지난 장 이후로 잡히지 않아 가격이 오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싸게 나왔다고 하시는 상인의 권유에 젓갈을 담을 양까지 구입한다. 생선전들엔 살이 꽉 차 한창 맛이 좋은 꽃게와 돌게와 참게들이 흔하게 보인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치는 마음이 참으로 그러그러하다.

 

대흥시장에서 한 소비자가 김장채소를 구매하고 있다. 

 

채소전들엔 김장철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배추, 무, 대파, 쪽파, 미나리, 갓, 생강, 마늘 등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너무 좋은 김장재료를 만나면 잡아놓은 날이 아직 멀었는데도 사들고 가고 싶다. 막 뽑아 나온 흙도 마르지 않은 무들이 나를 붙잡으니 그냥 지나치기 어렵지만 어쩌겠나 하면서 또 발길을 돌린다. 오늘은 김장 때 쓸 젓갈을 사러 왔으니 강경오일장에 온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갈 일이다.

강경천변에 앉아 육수거리를 팔고 계시는 분을 만났다. 보통은 새우, 멸치, 표고, 다시마, 솔치 등을 따로 사서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덜어 육수를 내는데 이분은 강경의 색을 잘 나타내는 혼합된 육수거리를 팔고 계셨다. 큰 새우, 작은 새우, 밴댕이, 실치, 멸치 등등이 섞여 보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국물이 절로 날 것 같은 것을 산처럼 쌓아놓고 팔고 계셨다. 동행도 한 바구니 사고 나도 한 바구니 산다. 덤을 원래 바구니 양만큼 많이 주신다.

젓갈을 사려고 온 강경장이니 젓갈을 사러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규모가 큰 젓갈시장 거리로 가지 않고 시장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에 스스로 짠함을 느낀다. 이것저것 젓갈을 사고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젓갈백반집이 아니라 복집을 찾는다. 금강하구둑으로 황복이 씨가 말라 예전과는 달리 밀복으로 끓여 나오는 복지리로 점심을 먹고 강경을 떠나면서 저녁엔 젓갈로 꽉 찬 밥상을 상상한다. 긴 시간 삭느라 버텨 온 젓갈의 맛이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한다.

 

강경젓갈시장의 전경.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