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교체 없으면, 한국농업도 없다”

  • 입력 2021.11.21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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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이대로는 못살겠다! 적폐농정 갈아엎자! 전국농민총궐기’에 참석한 농민들이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등이 적힌 상여와 갖가지 요구가 적힌 만장을 앞세우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이대로는 못살겠다! 적폐농정 갈아엎자! 전국농민총궐기’에 참석한 농민들이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등이 적힌 상여와 갖가지 요구가 적힌 만장을 앞세우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정확히 5년 전,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들이 국회를 목적지 삼아 남도 땅끝에서 출발했다. 국정농단의 추악한 현실이 드러난 직후 농민들은 스스로 민중의 죽창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를 통째로 갈아엎는 새 농사를 통해 오랜 세월 바라마지 않았던 농정개혁이 드디어 이뤄지리라,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겨울이 그렇게 시작됐다.

2016년 12월 9일, 농민들이 경찰의 숱한 방해를 넘어 기어이 국회의사당 앞에 올렸던 단 한 대의 트랙터는 무자비한 진압에 유리창이 깨지고 곧 도로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국회에 민의를 전달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날 오후 대한민국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을 가결했고, 이듬해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함에 따라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축출됐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바톤을 넘겨받아 정권을 잡은 또 다른 기성정당의 정치인들은 별다르지 않은 무관심으로, 혹은 이전보다도 더한 몰지각함으로 농업을 대했다. 한 해, 두 해 지켜보던 농민들은 결국 2019년 무렵 더이상 참지 못하고 문재인정부 농정에 ‘사망선고’를 하기에 이른다.

임기 말에 이르러서도 우리 농정은 직불제, 수급조절, 가격안정, 재해보상, 농지보전, 가축전염병 방역, 친환경농업 확산 등 오랜 세월 문제가 제기된 모든 분야에서 더 나빠진 성적을 내고 있다. 시계를 많이 돌려보지 않아도 농민들이 총궐기를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올해 수확기엔 변동직불제를 대신해 쌀값을 지킬 수단이라며 여당이 직불제 개편과 함께 밀어붙였던 쌀 자동시장격리제 도입이 정책 실패를 넘어 사실상 사기극이었다는 진실도 드러나고 있다.

농민들이 제1의 농정 적폐로 꼽는 농산물 시장 개방의 가속화는 특히 이 정부 들어 매우 놀라운 수준이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파기를 시사하자 납작 엎드린 자세로 2차 개정 협상을 먼저 요청하는 추태를 보이는가 하면, 마찬가지로 그의 말 한마디에 자진해 농업부문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내려놓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엔 한-미 FTA에 버금갈 정도로 농산물 개방의 수준이 매우 높은(96.3%)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CPTPP 가입 추진은 농업과 농민의 희생을 발판 삼아 통상 영토를 넓힌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민중의 삶을 돌보겠다는 이번 정부에서도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한 계기가 됐다.

실망으로 가득 찬 5년이 흘렀다. 농민들은 제주에서부터 트랙터를 몰아 서울로 향하는 고행을 다시 한 번 견디며 경고에 나섰다. 신자유주의를 도구 삼아 오직 자본의 이익만을 좇는 현 체제를 계속했다간 우리 농업이,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묵직한 호소가 끝없이 이어졌다. 농민들이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가 아닌 ‘체제교체’를 외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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