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악전고투’ 청년농민들, 내일이 더 나아지려면

[농정현안 좌담회] 2021 청년농민 분투기

  • 입력 2021.11.21 18:00
  • 수정 2021.11.21 20:2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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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가 뛰어들지 않는 농업, 젊은이가 돌아오지 않는 농촌.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기어코 땅을 일구며 공간을 지켜가는 청년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큰 뜻과 달리 현실은 어제도, 오늘도 순탄치 않다. 농촌의 유일한 미래인 청년농을 지지하기 위해 우리는 충분한 공력을 투입하고 있는가. <한국농정> 11월 좌담회는 현장의 청년농민들을 초빙해 그들의 삶을 청해 듣는 자리로 마련했다.

사회 심증식 편집국장·정리 권순창 기자

 

각자 다른 지역에서 다른 품목을 재배하는 네 명의 청년농민이 그들의 삶과 정책을 얘기하기 위해 지난 16일 〈한국농정〉 본사 회의실에 모였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전 포도농가 임현구씨, 충남 아산 배농가 김후주씨, 본지 심증식 편집국장, 전남 보성 녹차농가 최준용씨, 강원 정선 사과농가 최보란씨.
각자 다른 지역에서 다른 품목을 재배하는 네 명의 청년농민이 그들의 삶과 정책을 얘기하기 위해 지난 16일 〈한국농정〉 본사 회의실에 모였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전 포도농가 임현구씨, 충남 아산 배농가 김후주씨, 본지 심증식 편집국장, 전남 보성 녹차농가 최준용씨, 강원 정선 사과농가 최보란씨.

우리 농업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년농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왜 농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듣고 싶다.

김후주 충남 아산에서 유기농 배를 재배하고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과수원을 했고 아버지께서 유기농으로 전환하셨다. 어려서부터 농사지을 생각이 없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을지 유학을 갈지 고민하던 시기에 부모님의 부름을 받았다. 땅을 놀릴 수 없어 농사를 배우고 눌러앉게 됐고 지금은 아버지께서 강원 양구에 사과를 재배하러 가시면서 아산 농장을 내가 전담하게 됐다.

임현구 대전에서 포도농장을 60년 이어온 집안의 장자다. 아버지께서 농장 승계를 포기하셔서 숙부님께로 가는 바람에 현재 ‘왕좌의 게임’을 하고 있다. 드라마작가나 영화감독이 꿈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한농대를 가라는 권유를 받고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이후 공주대에 입학해서 창업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고 몇몇 특허를 냈으며 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저런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다 작년에 결혼해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최보란(30)강원 정선, 사과 재배
최보란(30)강원 정선, 사과 재배

최보란 강원 정선에서 사과·아스파라거스 농사를 짓고 있다. 난 원래부터 농사를 짓고 싶었다. 부모님께서 크게 농사짓진 않았지만, 농사짓고 산나물 뜯으시던 할머니를 쫓아다니며 가족의 품이 너무 좋아 할머니·엄마·아빠와 같이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래 비혼주의였는데 한농대에서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게 돼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남편 고향인 정선으로 왔다. 구례 친정에선 친환경을 많이 배워 왔는데 시부모님은 관행농사를 짓고 계셨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먹고 살기엔 관행농이 더 나은지라, 친환경을 마음에 품은 채 관행농사를 짓고 있다.

최준용 보성에서 차 농사를 짓고 있다. 고조부께서 개간해 농사지으시던 게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작년에 300평 규모 공장을 세워 생산과 함께 가공·판매·수출을 하고 있다. 전공이 법학인데,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로스쿨이 생김과 맞물려 인생에 전환점이 온 것 같다. 아버지께서 ‘어차피 나중에 올 건데 좀더 빨리 와서 키워보자’라고 말씀하셔서 설득을 당했다.


농업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도 많지만 농사 현장에선 기후라든지, 현실적인 문제들도 많다. 어떤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나.

김후주 기후위기의 징조가 보였던 게 내가 아산에 들어왔던 5년 전쯤부터다. 과수는 꽃 피는 시기를 예측 못하면 복잡해진다. 이전엔 시기가 딱딱 떨어졌는데 이젠 경력 30년인 부모님도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꽃이 핀 후에도 서리·냉해가 온다. 우리 배는 작년까지만 해도 냉해는 없었는데 올해 처음 시작됐다. 기후위기를 여실히 체감하고 있는데 대응이 막막하다. 과수는 나무라 더욱 대처하기 어렵다.

최보란 처음엔 자연적 현상으로 생각하고 참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5~6년 지나고 보니 기후변화가 심각한 것 같다. 옛날 어른들에 비해 인터넷이라는 정보수단이 있지만, 있어도 활용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정선엔 한농대 졸업자에게 2,500만원씩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다. 그걸로 아스파라거스 시설을 지었는데 눈이 많이 안오는 지역임에도 작년 3월 습설이 크게 내려 무너져내렸다. 사과 냉해는 말할 것도 없다.
 

임현구(35)대전, 포도 재배
임현구(35)대전, 포도 재배

임현구 최근 2~3년 엄청 춥거나 비가 엄청 오는 이상현상이 잦다. 시설포도는 추워지면 기름값이 오른다. 작년에 100평 연구소에 기름을 때는 데 450만원이 들었는데 올해는 750만원이 들 것 같다. 수익과 직결되는 사안이라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연구 중이다.

최보란 시장 가격도 무섭다. 전량 직거래를 하다가 작년부터 사과 수확량이 늘어나 시장에 내 봤다. 그땐 마침 시세가 좋아 생각했던 가격을 받았지만 올해는 반타작이다. 작년보다 2배의 양을 냈는데 작년과 동일한 수익이 들어왔다. 가끔 정부가 농가한테 너무 많은 걸 미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산만으로도 버거운데 판매도 우리가 해야 하고, 마치 회사 하나를 운영하라는 것처럼 내몰아 놓은 것 같다.

최준용 코로나 피해도 크다. 인건비가 기존보다 2배 가까이 올랐다. 보통 일당이 남자 기준 10만원 정도였는데 확 올라서 15만~18만원이 됐다. 그조차도 없어서 못 구한다. 교육체험도 크게 했는데 다 중단하고 지역 학생들 정도만 받고 있다. 기존 캐쉬플로우가 막힌 와중에 비용은 계속 들어가니, 가공 쪽으로 활로를 뚫고 있지만 버거운 상황이다.

김후주 가공이라고 쉬운 게 아니다. 특히 박근혜정부 이후 해썹(HACCP)이 의무화되면서 상근직원 2명 정도를 두지 않으면 운영이 안되는 구조며 해썹 관련 각종 자재비는 일단 일반의 2배다. 6차산업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잡았으면 실제 농가에서 할 수 있는 매뉴얼을 줘야 하는데,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가내수공업이나 똑같은 기준을 들이댄다. 그렇게 까다로워지면서 위생이라도 철저하면 괜찮은데 비효율만 커지고 대기업들도 위생사고가 터지기 일쑤다. 나도 가공을 그만두고 싶은데 유기농이라 가공 없인 판로가 마땅찮은 처지다.

최준용 처음 해썹인증을 받는 데 비용이 3,000만원 가까이 들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농사꾼 입장에서 생각할 때 중요한 건 원료인데 해썹은 가공과정만을 관리한다. 똥 가지고 식품을 만들어도 해썹식품이 되는 거다.

임현구 대체로 정책의 장려에 비해 진입장벽이 크고, 받을 수 있는 정책자금도 별로 없다. 시설을 규모화하려고 대전 그린벨트에 평당 10만원짜리 땅이 나와서 10억원까지 저리대출 해준다는 스마트팜 대출을 농협에 신청했는데 6만원 이상의 토지는 취급하지 않더라. 대체 어떤 땅을 사라는 거냐며 문제를 제기했더니 이번엔 포도라서 안된다길래, 스마트팜에 맞는 포도 양액재배 특허를 들이밀었더니 겨우 2억원 대출을 해준다더라.

김후주 토지 얘기를 하면, 땅에서 농사지어 이문을 남길 수 없는 게 전 세계적 흐름인 것 같다. 그 땅 넓은 프랑스·호주·뉴질랜드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땅값이 너무 올라서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 없으면 농업은 다 무너질 거라는 얘기다. 농업정책은 투입한 만큼 아웃풋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안된다. 그냥 무조건 밀어넣어야 한다. 농업선진국들이 그렇게 한다. 그게 안되는 나라들은 농지를 반 국유지로 만든다. 독일의 경우 자식이 셋이면 그중 한 명에게만 필지 전체를 물려주게 하는 정책을 펴는데, 우린 다 쪼개 나눠서 팔아버릴 수 있게 하지 않나.


어려움 속에서도 한 해 농사를 치러냈다. 올해 개인 농사의 총평, 그리고 농사짓는 보람에 대해 얘기해 본다면.

최보란 작년의 실수를 배움으로 삼아 되풀이하지 않는 데서 희열을 얻는다. 올해도 열매를 일궈냈고 한 해를 잘 살아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50cm 폭설로 인해 피와 땀이 서려있던 하우스가 무너져내렸고 들쭉날쭉한 비에 품질이나 수확량도 저조했지만, 그래도 판매를 잘 해서 내년에도 농사지을 힘은 남아있다.
 

김후주(34)충남 아산, 배 재배
김후주(34)충남 아산, 배 재배

김후주 마이너스된 만큼 플러스 요인도 있는게, 요즘 친환경 농산물 수요가 조금 높아진 것 같다. 그리고 이젠 직거래라는 게 해볼 만한 것 같다. 내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도 좋지만, 스마트스토어로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고 소비자들에게 유기농이나 농장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보람이라면 소비자들이 맛있다, 감사하다 인사하고 단골분들이 찾아주실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최준용 결국 소비자의 만족이 만드는 사람의 보람인 것 같다. 농사는 작년에 동해 입었던 녹차가 살아나는 시기라 나무를 양성하며 평범한 한 해를 보냈다. 미국으로 가는 물류비가 2배 이상 올라 수출에 고충을 겪긴 했다.

임현구 조부께서 일궈두신 포도밭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올해 포도값이 좋아 집안은 부유해졌지만, 나는 교육농장 사업을 주로 맡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타격을 입어 빈곤해졌다. 서비스업이지만 농업분야는 재난지원금도 안 나온다. 그래도 교육사업이 없어져서 포도에 집중하는 기회가 됐다. 연구도 열심히 하면서 경쟁력 강화의 힌트를 찾은 게 성과다.


청년농민을 육성하겠다며 정부가 많은 정책을 펴고 있다. 이 정책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청년농민이 많아지려면 어떤 제도가 더 필요할까.
 

최준용(38)전남 보성, 녹차 재배
최준용(38)전남 보성, 녹차 재배

최준용 정부가 직계비속을 지원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청년농의 대부분이 후계농이다. 규모를 키우려는 정부의 유도에 따라 법인사업자가 돼서 농업을 시작하게 되면, 정작 정부 정책사업을 받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진짜 청년농을 육성하고 싶으면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김후주 후계농 지원자금으로 농지를 살 수 있는데 가족들 땅은 못 사게 돼 있다. ‘후계농 지원자금’임에도 부모님의 땅을 두고 남의 땅을 따로 찾아 사야 한다. 세제를 봐도 농업을 규모화해봤자 쪼개서 승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게 개선되지 않으면 농업 후계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제도 악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데, 전국에서 실질적으로 청년농이라 할 만한 사람은 많아야 2만명이 못 될 것이다. 서울대 재학생 수가 1만8,000명이다. 우리나라 행정력이면 밀착 관리가 가능하며 심지어 부모에게 물려받는 승계농은 더욱 관리가 쉽다.

최보란 농업기술센터 등의 지원 조건이 바뀐 게, 마케팅·상자제작 등은 지원이 가능한데 내 자산이 될 수 있는 창고·해썹인증 등엔 지원이 안 된다. 사실 상자제작 같은 건 힘들지만 스스로 할 수 있고 오히려 창고 같은 시설에 지원이 필요한데 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덧붙여 부부는 남편이나 아내 한 쪽만 지원받을 수 있는데 결국엔 남편이 거의 지원을 받게 된다. 청년창업농 지원금 월 100만원이 시행됐을 때도 처음엔 며느리가 직계비속이 아니라서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더니, 다음해엔 또 며느리가 직계비속이라더라. 결혼한 여성농민도 같은 농민으로 대우받았으면 좋겠다. 심지어 잠깐 이혼하고 내가 받을 수 있는 사업들을 받은 뒤 다시 합칠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

임현구 정부가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금을 만들어 청년농을 붙들어내고 이슈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정책기간 3년이 끝난 후 후속사업이나 모니터링, 최소한의 관리도 안되고 있는 게 아쉽다. 우리나라 농업을 이끌어갈 사람들 아닌가. 덧붙여 개인적으론 청년농민들의 정착을 위해 교육을 위한 농촌재능나눔센터 같은 걸 구상하고 있다. 청년들이 농촌에 안 살려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육아·교육이다. 농촌엔 특히 편부·편모, 조손가정도 많은데 이들 모두 도시에 비해 교육기회가 적다. 최소한의 교육은 평등하게 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같다.

김후주 무엇보다 농업이 이 지경이 된 건 정치권에서 농업에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농업에 들어와서 정책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더 명확하게 문제를 얘기해야 농업이 변할 수 있다. 더불어 비농민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한다. 농업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캠페인·교육을 통해 국민적 동의가 이뤄져야 선진국처럼 적극적인 농업정책이 이뤄질 수 있다. 공교육 정식 교육과정에 식생활교육을 넣고, 농촌에 아이들을 필수적으로 오게끔 만들려는 등의 시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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