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지금까지 아파본 적 없는데 내가 왜 아프지?

  • 입력 2021.11.14 18:00
  • 기자명 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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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진료 중 왕왕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파본 적이라곤 없는데 왜 아프지요? 남녀노소 누구나 이런 얘기를 하지만 연령대별로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아주 젊은 분들은 정말 ‘어, 내가 왜 아프지?’ 이런 첫 통증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고 연세 드신 분은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더 앞서는 듯합니다. 통증에 대한 의미가 나이에 따라 달리 받아지더라도 통증 자체에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통증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극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은 이렇게 아프느니 차라리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픈 통증도 많습니다. 차라리 인류가 통증을 못 느끼는 생명체로 진화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몸에는 외부 자극을 인지하는 감각수용기가 있습니다. 온도를 느끼고, 누르는 압력을 느끼고, 화학적 자극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자극들이 통증수용기를 활성화시키면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진짜 그런 환자도 있습니다. 땀도 없고 통증도 없는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 환자입니다. 이 병은 통점, 냉점, 온점 등의 감각을 뇌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유전성 질환입니다. 이 경우 3살이 되기 전 절반이 사망하고 25세 넘게 사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즉 통증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진화과정 상 통증을 느끼는 생명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생명체 모두 세상에 나타났다가 자연선택에 의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생명체는 도태된 것입니다. 결국 통증을 느끼는 생명체가 더 오래 살고 자손을 번성시킬 확률도 더 높았던 것이지요.

불편한 동거지만 통증은 미우나 고우나 달고 살아야 합니다. 오히려 통증이 있어 더 큰 위험을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통증은 내 몸에 이상이 생겼으니 대비를 하라는 신호로 봐야 합니다. 너 지금 무리하고 있으니, 몸을 혹사시키고 있으니 좀 쉬어라는 명령으로 볼 필요도 있습니다.

한의학에는 ‘분절삼굉’이라고, 의사는 팔뚝뼈가 세 번 정도 부러져봐야 아픈 이들의 통증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환자의 통증이 엄청 심하다는 것을 의사는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역설적으로 의사가 환자의 통증에 무덤덤하다는 표현일 수도 있는 단어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통증에 그저 객관적으로 쓸려고만 하는 건 아닌지 문득문득 자문해보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이 120세까지 간다는 얘기를 환자분들에게 하면 연세 드신 분들은 대부분 손사래를 칩니다. “그때까지 살기 싫다. 아프면서 그렇게 오래 살면 뭐 하느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 아프고 오래 살고 싶어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세상을 살 때 꽃길만 걸을 수 없듯 통증 없이 평생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안 아프고 오래 살기보다 덜 아프고 오래 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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