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가성 광고

  • 입력 2021.11.1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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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한겨레>에 광고 의뢰를 중단한 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 곳간은 시민단체 ATM”이라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을 <한겨레>가 비판한 뒤 벌어진 사건으로, ‘언론탄압’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결코 과하지 않은 상황이다.

기관·기업·단체들이 언론사에 의뢰하는 광고는 당연히 그들의 활동이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 광고료가 언론사 경영에 필수적인 재원이 됨을 부정할 순 없다. 언론사에 정기적으로 광고를 의뢰하는 대부분의 광고주들은 홍보 목적과 더불어 언론사의 건강한 발전과 공익에 일조하려는 대승적 취지를 품고 있다.

그런데, 광고주가 ‘기사의 달고 씀’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순수하고 대승적인 취지는 추악하고 비열한 술수로 뒤바뀐다. ‘내 입에 쓴 기사를 쓰면 광고를 끊겠다.’ 뒤집어보면 ‘내 입에 달콤한 기사를 쓰면 광고를 주마’가 된다. 이 광고주의 광고는 명백히 대가성 광고다.

이는 단지 개별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다. 비판 보도를 한 언론사 한 곳에 광고가 끊기는 순간, 광고를 유지하고 있는 나머지 모든 언론사들은 대가성 기사를 쓰고 있는 꼴이 된다. 그 언론사들 스스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광고주의 못된 마음이 졸지에 그들에게 불명예를 부여하는 것이다.

본지 역시 광고 중단의 시련을 여실히 겪고 있다. 도매시장 독과점 문제의 심각성을 보도하자, 기득권인 도매법인들과 도매법인협회는 유일하게 비판적 보도를 쏟아내는 본지를 향해 광고 중단을 통보해온다. 규모가 영세한 언론사, 더욱이 전문지이기 때문에 그 타격은 <한겨레> 같은 주류 언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광고수익이 언론사 수익의 전부이거나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광고수익을 통해 적자·흑자경영이 갈리는 건 대부분의 언론사가 같은 처지일 것이다. 때문에 서울시나 도매법인들처럼 광고를 이용해 언론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시도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한 유효하다.

농업계엔 농식품부·농협·aT·농어촌공사 등 수많은 농관련 기관·기업·단체들과 수십개의 농업전문지들이 존재한다. 그 속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추악하고 비열한 광고주가 더 이상은 나오지 않기를, 그리고 그에 굴복하는 심지 약한 언론사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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