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온 학생들 “작은 학교 지켜주세요”

학생·교직원·면장까지 ··· 학생 모집 위해 선물 보따리 들고 상경

  • 입력 2021.11.12 10:19
  • 수정 2021.11.16 20:30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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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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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남 해남군 북일면 작은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서울시청 앞에서 연 '학생모심' 기자회견에서 북일초등학교 6학년 조정인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한우준 기자

 

서울시청 앞 광장에 트랙터 3대가 도착했다. 경쾌한 풍물소리도 광장을 가득 채웠다. 건널목을 건너는 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지나가던 외국인들은 서울 한복판에 등장한 트랙터와 풍물놀이가 신기한 듯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트랙터 사이로 ‘100년 작은학교 살리기’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펄럭였다.

지난 9일 오전 10시 30분께 전남 해남군 북일면 작은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추진위) 회원들과 북일초등학교, 두륜중학교 학생들, 북일면장 등 100여 명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문 닫을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구하기 위해 ‘학생 모심’ 캠페인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새벽 4시쯤 버스 두 대에 나눠타고 해남에서 출발한 북일면 주민들과 학생들은 400km 이상 거리를 달려 6시간 만인 오전 10시경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였다. 주민들과 학생들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현수막을 펼치고 손팻말을 나눠 들며 일사불란하게 행사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행사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이미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에서 법무사로 일하는 이은식(70)씨는 “고향 사람들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8시 30분부터 기다렸다”라며 “고향 학교가 많이 없어져 안타깝지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잘 될 거라 믿는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기자회견 예정 시간이 다가오자 북일면 주민들과 북일두레풍물단은 ‘100년 작은학교 구하기’라고 적힌 현수막을 앞세워 서울시청 방향으로 행진에 나섰다. 흥겨운 풍물소리를 따라 ‘교육천하지대본(敎育天下之大本)’이라고 적힌 펼침막과 ‘자연과 어우러진 생태환경교육’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든 주민들이 뒤따라 장관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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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남 해남군 북일면 작은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서울시청 앞에서 연 '학생모심' 행사에서 학부모들이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우준 기자

 

오전 11시 정각, 30여 분 동안 이어진 힘찬 풍물소리가 서울시청 앞에서 멈추자 ‘학생 모심 호소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기자회견은 김도희씨와 문창옥 고수의 판소리로 문을 열었다. 북일초와 두륜중을 졸업하고 전북대학교에서 한국음악을 공부하는 김도희(22)씨는 판소리 흥보가의 ‘집터 잡아주는 대목’을 열창했다. 그는 “대학을 전북으로 가면서 북일초 소식을 못 듣다가 이번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와서 이 자리에 오게 됐다”라며 모교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북일초등학교 6학년 조정인양은 “우리 북일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2명, 두륜중학교는 19명밖에 남지 않았다”라며 “친구들과 왁자지껄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 두륜중학교 학생회장 이보미양은 “두륜중학교가 작은 학교라는 이유로 폐교 위기에 처하게 돼 우리 학교를 살리고자 이 자리에 서게 됐다”라며 “지역 학생들이 두륜중학교에서 성장하고 나아가 우리 지역을 빛내는 훌륭한 인재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학교를 지켜달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을 마치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날 아침 서울의 최저 기온은 4도였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시민들은 비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100년 작은학교 구하기’라고 적힌 플랜카드 너머로 ‘웃고 뛰고 꿈꾸는 마을 학교 해남 북일’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던 북일초등학교 6학년 최영홍군은 손이 시린 듯 손팻말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핫팩을 꽉 쥐었다. 최 군은 그래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 듯 몸을 움츠리고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 모습을 본 송순례 해남군의회 의원은 “학생들이 아침도 못 먹고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서울에 왔다”라며 “마음이 많이 아프고 울컥한다. 우리 마음이 잘 전달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전남 해남군 북일면 작은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서울시청 앞에서 연 '학생모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북일면으로 오세요'를 외치고 있다. 한우준 기자

 

북일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은 총 5명이다. 그 중 유일한 남학생인 최 군의 가장 큰 고민은 또래 친구들이 적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학교는 환경이 너무 좋다. 학교에 잉어도 있고 닭이랑 거위도 키운다”라면서도 “또래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여러 명이 해야 재밌는 것들을 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학교는 전남 보성으로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또래 친구들이 더 많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1922년 개교해 한때 재학생 수 2,000명이 넘었던 북일초등학교는 적은 학생 수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허건 북일초등학교 교무부장은 “모둠 활동을 할 때 조가 하나밖에 없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 쉽지 않다”라며 “체육활동도 학년별로 신체발달단계가 달라 같은 학년끼리 해야 하는데 지금은 학생 수가 적어 그러지 못하고 있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북일초등학교 이은별 양도 “우리 학교 또래 친구들은 두루두루 친하다”라면서도 “모둠 활동을 할 때 조를 나눌 수 없어 아쉽다”라며 “오늘 다 같이 고생했으니까 결과가 좋아서 친구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옹기종기 모여 시민들에게 홍보 팜플렛을 나눠줬다. 생각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학생들에게 한 시민이 수줍게 다가와 손난로 여러 개가 든 비닐봉투를 건넸다. 서울시 금천구에 사는 이슬기(38) 씨는 “작은학교를 살리려고 기자회견을 연다는 기사를 보고 휴가를 내고 왔다”라며 “나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는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마음에 공감한다. 25년이 지나도 나아진 게 없다니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남과 접해있는 전남 강진이 고향이다. 강진에서 초중학교를 다니고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해 정착했다. 두 자녀의 교육 문제로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고향과 가깝고 지인도 있는 해남을 1순위로 고려하고 있다”라며 ‘학생 모심’ 캠페인에 관심을 보였다.

‘학생 모심’ 캠페인에는 온 마을이 힘을 합쳐 학생을 돌보겠다는 추진위의 각오가 담겼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북일면, 주민자치회 등이 협력해 수차례 회의 등을 거쳐 북일면으로 전입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해 빈집을 수리해 월 10만원 내외에 임대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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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윤채현 두륜중학교 교장과 신현 북일초등학교 교장이 북일면 귀촌을 호소하고 있다. 한우준 기자

 

북일초등학교와 두륜중학교는 다음 달 3일 전·입학을 희망하는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북일초등학교 북일관에서 학교설명회를 열고, 학교운영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일자리 알선, 주택 지원 안내, 귀농·귀촌 안내, 지역민들과 만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학생모심 신청과 학교설명회에 참여를 희망하는 학부모는 신청서를 작성해 오는 26일까지 이메일(bugil@korea.kr)이나 팩스(061-532-0434)로 보내거나 학교에 직접 방문해 제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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