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건강, 교육이 공존하는 공공급식 현장을 위하여

  • 입력 2021.11.07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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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초등학교 과일간식 지원사업’ 확대 논란은 우리에게 학교급식, 나아가 공공급식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하면서도 의외로 간과된 숙제들을 던진다. 요약하자면 △노동이 존중받는 공공급식 △시민의 건강을 위한 공공급식 △교육을 통한 가치 전달이 이뤄지는 공공급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공공급식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지난달 20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가해 비정규직 철폐 및 학교급식 현장 노동환경의 대대적 개선을 촉구했다. 조리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위원장 박미향, 학비노조)은 학교급식 현안과 관련해 △직업성 암 전수조사 실시 △급식실 환기시설 전면교체 △급식 조리종사자 1인당 식수인원 절반 감축을 통한 배치기준 표준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배치기준 표준화’다. 현재 급식 조리노동자의 적절한 배치기준에 대한 전국적 통용 기준마저 없다는 게 이재진 학비노조 정책국장의 지적이다. 달리 말해 급식현장에 충분한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정책국장은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1인당 식수인원, 즉 한 명의 노동자가 식사 제공을 맡는 인원은 평균 146명으로 군대 75명, 병원 32명, 공공기관 64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숫자로, 여타 기관에 비해 식수인원이 2~3배 높다는 것은 노동강도도 2~3배 높다는 뜻”이라며 “교육부는 급식의 운영주체로서 배치기준에 대한 연구조사마저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당장 배치기준 표준화가 어렵다면, 적어도 관련 연구부터 시작하라는 게 학비노조의 요구다. 이에 대한 교육당국의 답변이 없을 시 2차 총파업을 감행하겠다는 입장”임을 밝혔다.

또한 급식 관련 노동환경의 대대적 개선이 필요하다. 일부 학교의 급식실과 조리실은 애당초 설계가 잘못돼 지하 또는 반지하에 위치해 있기도 하며, 작업 특성상 땀을 흠뻑 뒤집어쓰고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실, 하다못해 두 다리 쭉 뻗을 휴게실도 없는 학교가 적지 않다는 게 이 정책국장의 설명이다.

환기시설의 경우, 대다수 학교 급식실엔 ‘캐노피형 후드’, 즉 위쪽에 설치된 후드가 있어 튀김·구이 조리 시 발생 가능성이 높은 조리흄(cooking fumes) 등의 유해가스가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노동자의 호흡기로 들어갈 여지가 높다. 이 정책국장은 이와 관련해 “근본적으론 급식실의 후드를 전면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향후 캐노피형 후드를 측방형 후드로 교체해 유해가스가 노동자의 호흡기를 거치지 않고 배출될 수 있는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일이 당장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서

이번 논란을 놓고, ‘영유아 및 학생들의 과일 접근권’ 측면에서 과일간식 확대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달리 말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과일 섭취가 절실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에 대한 과일 접근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김재철 부천시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전교조가 성명에서 농식품부에 대해 학교현장을 ‘국산과일 판매처로만 여기냐’고 비판한 게 뼈아프지만, 냉정히 말해 틀린 말만은 아닌 듯하다”며 “그동안 농식품부는 학교급식 영역을 그저 ‘판로’로만 생각해 온 것 아닌가 싶다. 푸드플랜(먹거리계획)의 시대에, ‘판로’ 확보를 넘어 시민들이 ‘소비’하게 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의 사례가 주목된다. 경기도는 ‘어린이 건강과일 공급사업’을 통해 도내 모든 어린이집·지역아동센터·공동생활가정·다함께돌봄센터·가정보육 어린이 등 총 58만3,000여명의 어린이에게 경기도산 과일(친환경·G마크·GAP 인증)을 공급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공공급식 영역에 온전히 포함된 초등학생들보다, 어찌 보면 영유아들의 과일 섭취 문제가 더 시급하지 않을까. 어린이집은 여전히 공공급식 영역에 포함돼 있지 않은 만큼, 어린이집 과일 공급을 확대한다고 하면 정당성 측면에서 호응받기 쉽다”고 한 뒤 “기존에 과일간식이 공급되던 초등학교 돌봄교실의 경우도 ‘방과 후 교실’ 형태라 그때 과일을 제공하는 건 시의적절한 형태가 될 수 있다. 반면 정규수업 시간에 과일을 제공한다는 건, 학교현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당장 맞는 방법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식생활교육, 이제는 주연으로

지난 2018년 11월 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서울시 학교·공공급식 한마당 - 농부의 손에서 아이들 식탁으로’ 행사 중 친환경 과일을 손에 쥔 아이들이 ‘다음 중 친환경농산물이 아닌 것은?’ 설문조사에서 정답인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 칸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서울시 학교·공공급식 한마당 - 농부의 손에서 아이들 식탁으로’ 행사 중 친환경 과일을 손에 쥔 아이들이 ‘다음 중 친환경농산물이 아닌 것은?’ 설문조사에서 정답인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 칸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여기서 잠시 학교급식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급식 먹거리에 대해 어떻게 여기는지 살펴보자. 김포 금파초등학교 박정미 영양교사는 학생들의 과일·채소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를 이야기했다.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엄마가 집에서 먹거리를 어릴 때부터 챙겨준 아이들은 학교급식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다양한 먹거리를 접해보지 못했고, 부모가 바빠 외식하거나 외부 음식을 사다 먹이는 경우엔 자연식품을 많이 접해보지 못하며 큰 아이들이 많다. 후자의 아이들은 미처 경험해 볼 기회가 없거나 적었던 채소 반찬이 나오면 인상을 찌푸리고, 자주 접한 가공식품이 나오면 좋아한다. 학교에서 1년에 1~2회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보면, 학생들이 대체로 열광하는 먹거리는 패스트푸드 종류인 치킨, 라면, 햄버거, 피자 등이다.”

이 말인 즉슨, 과일간식 확대든, 그 어떤 친환경 공공급식 확대정책이든, 먹거리 관련 ‘교육’이 담보되지 않는 한 공공급식 정책과 우리 농업의 연결고리는 끊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항상 먹거리정책의 부수적 영역으로 취급돼 온 식생활교육이 이젠 전면에 나서야 할 때다.

탁명구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학교급식 관련 영역에서 교육·홍보에 대한 내용이 강화돼야 한다. 먹거리의 균형잡힌 섭취에 따른 영양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먹거리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이 먹거리를 만들어낸 우리 농민들의 현실 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특히 영유아 단계부터 아이의 입맛을 어떻게 들일지에 대한 계획을 섬세하게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획만 잘 짜서 될 게 아니다. 급식현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궁극적 방안이 ‘사람’이듯 식생활교육 강화의 궁극적 방안도 ‘사람’이다. 탁 사무총장은 “민간영역에서의 식생활교육 강사단 교육을 통해 양성된 이들을 국가직무능력표준 영역에 포함시켜 ‘국가 공인 식생활 전문가’로서 교육 영역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미 교사는 본인이 재직 중인 학교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급식 제공 시 나물반찬류가 나오면 잔반량이 많다. 그럼에도 유채나물, 시금치나물 등 다양한 나물류를 학교급식에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친구들이 학교에서 그것을 안 먹어보면 그런 나물의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유채나물이 나왔다 하면 유채나물의 영양성분, 좋은 점 등을 쪽지로 적어 담임 선생님들께 보낸다. 이렇게 한 두 번 먹어보는 경험이 아이들에겐 굉장히 중요하다. 어릴 때 안 먹어보면 커서도 절대 안 먹지 않나. 따라서 학교급식은 다양한 식단과 다양한 음식을 경험해 보고, 아이들이 올바른 식습관을 가질 수 있게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과일급식 확대 또한 그러한 학교급식의 목적 속에서 진행돼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부천시 친환경급식지원센터가 올해 부천시 계남초등학교에서 진행한 초등학생 대상 식생활교육 프로그램 ‘잔반없는 급식미션’. 학생들이 잔반 없이 깨끗이 비운 급식판을 보여주고 있다. 부천시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제공
경기도 부천시 친환경급식지원센터가 올해 부천시 계남초등학교에서 진행한 초등학생 대상 식생활교육 프로그램 ‘잔반없는 급식미션’. 학생들이 잔반 없이 깨끗이 비운 급식판을 보여주고 있다. 부천시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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