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업경영체·농가와 농가인구·농업인 그리고 농민

  • 입력 2021.11.07 18:00
  • 수정 2021.11.10 21:22
  • 기자명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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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예산편성 시기를 맞아 매년 이맘때 ‘농민수당’ 개선방안 논의가 지역별로 이뤄지는데 주요 쟁점사항은 “누구(정책대상자)에게 얼마(예산규모)를 줄 것인가”다. 농정예산 규모가 한정돼 있으니 결국 정책대상자 기준을 정하는 게 단연 핵심이 된다.

즉 △개별 사람 혹은 가구당 지급할 것인가 △농업경영체 경영주 외에 농업인 구성원을 몇 명까지 인정할 것인가 △주민등록주소지와 경작지가 다른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농사를 짓는다고 보기 어려운 고령농 등도 인정할 것인가 △불가피하게 농업경영체에 등록하지 못한 자는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농업경영체는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진다. 이쯤되면 농업경영체 수당인지, 농가수당인지, 농민수당인지 점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렇듯 농민수당 논의과정에서 본질은 항상 빠져 있다. 농민 개념과 기준에 대해 합의한 이후 그에 맞게 실행했으면 혼선이 줄었을 텐데 여전히 정책대상자 기준을 어디까지 완화하는 것이 적절한가, 어떤 부분을 강화할 것인가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개별지급 여부, 경작 여부, 지역 거주 여부 등은 모두 농민의 개념과 기준을 관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업경영체, 농가와 농가인구, 농업인, 농민 중에 우리는 앞으로 그 존재들에게 어떠한 이름으로 불러줘야 하는가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제도권과 행정문서에서만 쓰이는 ‘농업경영체’는 공익직불금을 포함한 대부분 농업보조사업 대상자 자격기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용어다. 공식적으로 농업인과 농업법인 통계로서 집계된다. 단, 경영주 1인만이 법적 농업경영체로 인정받고 나머지 농업인 가족구성원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농업경영체는 주로 농가 단위라고 인식하게 된다.

둘째,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에서만 쓰이는 ‘농가’와 ‘농가인구’는 가족농이 대부분이었던 시기에 적합한 용어였지만 현재 제도권 틀 내에서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셋째, 법률과 시행령에서만 쓰이는 ‘농업인’은 농식품기본법, 농지법, 농업협동조합법 등에 개념과 기준이 명시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통계는 없고 농업경영체 중 농업인 통계로서 집계된다. 농업인 충족요건은 농지면적, 농업종사일수, 농산물 판매금액인데 실제 1,000㎡ 농지면적만 충족되면 농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넷째, 헌법과 현실에서만 쓰이는 ‘농민’은 법률, 시행령, 제도권, 행정문서, 통계 등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용어다. 1987년 개정된 헌법에 ‘농어민’이란 용어가 잔존해 있긴 하지만 그 외 1994년 농지법이 정식 발효된 이후 모든 문서에서 사라졌다. 제도권 틀 내에서 농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불가하다.

결국 농업경영체만 실효성있는 이름이고 나머지 농가, 농가인구, 농업인, 농민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름인 것이다. 현실에서 그 존재를 인정받는 것과 법적 제도로부터 그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달라서 정책대상자 자격기준으로부터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농업경영체(농업인, 농업법인)≒농가(농가인구)≒농민’이라는 어정쩡한 등치화가 혼란을 발생시키면서 급기야 농정철학과 방향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이름에는 정신과 철학이 투영돼 있고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야말로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선행연구 결과에 의하면, 농민 기준은 ‘실제 마을에 거주하는지 여부, 실제 농사를 경작하는지 여부, 농업생산활동을 주로 하되 부가적으로 다기능 농업과 관련한 활동 여부, 마을공동체 기여와 같은 공익기능 수행 여부’로 모아진다. ‘농민’이란 이름은 ‘농지-농사-농민-농촌’ 등 각 요소들이 서로 일관성을 가지는데 농사활동 외에도 농촌 지역 공간까지 포괄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에 향후 접근관점과 논의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농민’으로 용어를 통일시키되 현행과 같이 농정보조사업 대상자 자격기준에 ‘농업경영체 등록한 자’가 아닌 개별사업 특성별로 ‘OO농지규모 이상 실제 경작하는 자’, ‘OO작목을 실제 재배하는 자’, ‘OO지역에 실제 거주하는 자’, ‘OO지역에 실제 마을일에 동참하는 자’ 등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실제’다. 그리고 정말 실제인지 아닌지 아는 것은 현행 행정 관리감독 체계(서류 중심의 점검과정, 읍·면 사무소 담당자가 1명도 채 안 되는 현실 등)에서 거의 불가능하므로 중앙부처의 일괄적인 통제·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마을로 권한을 세밀하게 분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다. 따라서 이 숙제는 행정만의 숙제가 아닌 ‘행정과 민간 공동의 숙제’로 되는 경로다. 농민도 권리 행사와 동시에 책임과 의무를 동반하는 것에 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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