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K-식품·화장품산업 관련 법제의 후진성

  • 입력 2021.10.24 18:00
  • 기자명 사동천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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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천 홍익대 교수
사동천 홍익대 교수

 

식품, 화장품, 의약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는 데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검사기관 소속의 전문연구자라 할지라도 당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교육을 한 후 이해를 시켜야만 비로소 긍정적인 보고서를 얻을 수 있다. 기성의 유명 제품에 대한 모방 제품이거나 기성품의 변형품일 경우에는 이를 통한 방안이 적절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K-wave 한류 시대, 한국의 선도적 기술 제품의 경우에는 이러한 제도가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함량 미달의 검사기관이 고도의 기술을 개발한 민간 연구를 심사하는 격이다.

농수산물, 식품, 화장품, 의약품 등의 성분에 관한 법제는 대부분 허용항목 열거방식을 취하고 있다. 규정된 허용 성분 외의 성분이 함유되었을 때 모두 허가를 받아야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신성장 제품의 개발을 저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더욱이 허가 기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하며 검사기관 연구원들을 교육해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은 중소 민간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연히 뇌물구조를 양산하고 갑질 문화로 이어진다. 더욱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의 탄생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원래 허용항목 열거방식의 법제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조선인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특정 분야의 교육만을 허용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를 위해 조선인을 조사하였더니 조선인의 지능지수와 신체조건이 일본인을 능가함이 밝혀지자, 조선인에게 고등교육을 하지 않기 위해서 단순 노무 직종의 교육만 할 수 있다는 규제 입법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일제의 잔재는 법령에 있어서 꾸준히 이어져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국민의 안전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조심 또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러기에는 국제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의약품으로 승인받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실험자금과 임상실험을 요구하는 미국조차도 식품이나 화장품 규제는 풀려있다. 바람직한 입법방식은 ‘함유할 수 없는 성분 물질을 나열하고, 인체 세포 독성 실험을 통해 기타 인체에 독성이 있는 물질의 함유 금지’를 명시하고 독성 실험 결과를 첨부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제품의 시중 유통 시 만일 부작용이 발생하면 즉각 회수하고, 피해자에게 민사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가령 새로운 성분이 함유된 식품이나 화장품을 출시한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에서는 1년에서 3년에 걸쳐 허가를 받아야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성분을 표시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소기업은 폐업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런데 같은 제품을 미국에서 출시한다면 특별한 허가 절차 없이 제품을 간단히 출시할 수 있다. 성분표시도 자율이다. 광고하고 싶은 효능을 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을 한국으로 수출하면 된다. 한국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출시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해외 출시는 한국에서 허가 없이 유통될 수 있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허가 절차인가? 더욱이 최근 K뷰티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화장품의 경우 더욱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최소 1년에 걸쳐 허가를 받아 출시하더라도 모든 성분을 표시해야 한다. 영업 노하우가 그대로 드러난다. 해외 바이어 기업이 수입하다가 어느 순간 성분표시를 보고 직접 그 성분 제조기업을 접촉하여 짝퉁을 만들어 판매한다. 오래지 않아 개발비를 많이 들인 한국산 진품은 도태되어 버린다. 소위 복제품이 정품을 밀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은 미국과 함께 인간을 위한 그린바이오인 ‘그린바이오 투 레드바이오 산업’의 핵심 국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신산업의 육성은 2030년대 한국을 현재 GNP만큼의 추가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원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을 위한 그린바이오 산업은 가장 인간 친화적인 산업으로,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이나 화학적 처리 없이 가장 생태적 방법에 따라 식품, 동물의약품, 화장품,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이들 제품은 정보가 곧 특허이고 기술이다. 그 중요한 정보들을 다 공개하게 할 것인가?

한국은 이제 ‘페스트 팔로우’ 시대를 지나 ‘퍼스트 무버’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더 많은 한국의 민간기업들이 더 빠르게 세계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법제의 후진성을 벗어난 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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