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⑦] 텅 비어 고요하다, 청천오일장

  • 입력 2021.10.24 18:00
  • 수정 2021.10.24 18:2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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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청천오일장의 전경.
충북 괴산군 청천오일장의 전경.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돌이켜보면 처음엔 구경을 하러 갔었고, 다음엔 해마다 몇 번씩 버섯을 사러 다니던 곳이 충북 괴산군의 청천면에 있는 푸른내시장이다. 잡아놓은 날이 가까워지자 나는 오일장이 제대로 서는지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버섯을 시장 안이 아니라 거리의 가게들에서 늘 보고 구입했어서 시장 안 골목을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었고 면단위 시장이라 혹시 영양시장 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면사무소에서는 장이 선다고 했지만, 그날 도착한 청천장은 그야말로 텅텅 비어 있었다. 9시가 지나고 10시가 되어도 여전히 시장 안 골목엔 뭔가를 팔려는 사람도 뭔가를 사려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오일장들 같으면 9시도 늦은 시간이라 북적이고 시끌시끌 했을 텐데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시장 안은 고요하고 차들이 다니는 거리의 가게들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섯들이 즐비한 채로 호객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장으로 옮겨갈까 하다가 버섯을 보러온 시장이니 조금 더 기다리고 다녀보기로 했다. 얼굴을 알아보면서 숨겨놓은 송이와 능이버섯을 내놓고는 구입을 종용하는 상인을 뿌리치기 어려워 지갑을 연다. 금방 후회할 일이지만 어쩌면 장을 갈 때부터 그럴 것이라 예상한 일이고 그게 또 시골 오일장의 매력이기도 하다고 위안을 해본다.

사거리의 한쪽엔 지자체에서 밀고 있는 버섯을 위한 공룡 같은 건물이 하나 버섯랜드라는 이름으로 버티고 서있다. 예전에 죽염공장이었다고 전해지는 예쁜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새 건물은 버섯랜드가 끝이 아니고 그 옆으로, 그 옆으로 또 짓고 있다. 오래된 우물과 적산가옥 하나, 그리고 고목이 된 팥배나무 한 그루가 어쩌면 곧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지키고 싶은 전통시장은 사라져갈 위기인데 새로운 건물에 시장과 겹치는 물건들을 파는 매장과 카페를 설계하는 지자체에 아쉬움을 넘어 정말 실망스럽기만 하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예산 집행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시장 옆에 있는 농협마트는 규모와 다르게 전국에서 손꼽히는 매출을 올린다고 한다. 시장은 죽었지만 근처 화양계곡과 금관숲이 있어 관광객들이 올려주는 매출이라고 한다. 오래된 시장 안으로 모든 걸 끌어들여야 했다. 그랬으면 장이 서는 날 파리를 날리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쌍둥이방앗간'의 물건들.
'쌍둥이방앗간'의 물건들.
'청천잡곡상회'. '쌍둥이방앗간'은 시어른이 운영하는 이 가게의 잡곡으로 가공품을 만들어 판다. 

 

점심 무렵이 되니 여기저기 매대가 만들어지고 이런저런 물건들이 보인다. 들기름과 참기름, 볶은 깨를 들고 나온 쌍둥이방앗간의 물건들은 오일장의 물건들과는 달리 도시인들의 기호가 반영된 것이라 눈이 간다. 카드는 안 되지만 현금이 없을 땐 입금하라는 계좌가 카카오뱅크라 쉽게 휴대폰 하나로 결제가 가능하다. 쌍둥이 엄마는 옆 매대의 잡곡들을 가리키며 청천잡곡상회 물건들인데 시어른들이 하시는 가게란다. 시어른들은 잡곡을 파시고, 자녀들이 그 잡곡을 구매해 가공품으로 파는 이 수익구조가 참으로 좋아 푸른 콩을 한 봉지 사들었다.

볼거리가 없는 오일장은 재미가 없다. 그래서 다시 한 바퀴 돌아본다. 여전히 시장 골목 안은 사람의 그림자 하나 만나기 힘들다.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청천면에서 가장 오래된 버섯상이라는 곳에 가서 잡버섯을 산다. 먹버섯도 조금, 가지버섯도 조금, 칡버섯도 조금 산다. 버섯 채취는 칡버섯을 마지막으로 끝이라, 데친 후 염장을 해서 두고 조금씩 소금기를 빼서 파는 잡버섯은 1년 내내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이다. 잡버섯은 소고기를 조금 넣고 육개장처럼 붉고 맵게 끓여도 좋고, 무청과 함께 된장국으로 끓여도 좋다. 하다못해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등 어떤 이름의 탕이나 찌개, 국 등과 어울린다. 넉넉히 구입해 냉동해 두고 가을·겨울 동안 때때로 이용하면 좋다.

장에서 돌아온 나는 먹버섯을 다듬어 밥에 넣고 장에서 먹은 매운 버섯탕과는 다른 순한 닭국물을 바탕으로 두부도 함께 넣고 버섯전골을 끓여 식탁에 올린다. 따뜻한 밥으로 기운을 얻고 남은 버섯들을 갈무리하고 나니 아침에 보았던 장의 모습처럼 내 안이 텅 비고 고요해졌다.

 

잡버섯으로 만든 버섯전골. 잡버섯은 어떤 찌개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잡버섯으로 만든 버섯전골. 잡버섯은 어떤 찌개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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