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여성농민과 가을

  • 입력 2021.10.24 18:00
  • 기자명 정영이(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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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이(전남 구례)
정영이(전남 구례)

가을이 깊어 가는 날들이다. 들깨, 콩대, 고구마대, 호박고지, 삐져서 소쿠리에 줄 세운 빨간 고추 등속까지 마을 회관 앞 공터, 길이 너른 곳이나 볕 좋은 골목길 곳곳에 농심을 담아 널려있다. 고구마 캔다는 소식, 김장배추밭을 돌아보는 바들댁 아짐, 군섭아재네와 아짐은 아직도 주렁주렁 달린 풋고추를 훑어내고 있다.

아재의 서울 살던 딸이 오십 나이가 넘어 홀로 돌아와 읍내에 식당을 차렸는데, 작년에 섬진강 수해로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지붕까지 물이 차고 큰 피해를 입어 상심이 컸다. 오가는 도로 가에 있는 아재네 밭은 딸 식당에 찬거리로 쓰기 위해 철에 맞춰 온갖 씨앗을 뿌리고 거둬 푸성귀 백화점 같다.

그 밭도 하나, 둘 비워져 가고 마늘이며 양파가 몇 두둑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려 동면을 준비하고 있다. 배보다 아삭하고 맛있다는 태추단감 수확을 마쳐간다는 소식, 돌배 따고 모과도 노랗게 익어가니 그도 거둬야 한다. 단감 수확이 한창이고 어느 집 처마에는 벌써 곶감을 깎아 걸었다. 하루 볕이 금싸라기 같다는 농촌의 가을은 빠르게 비워져가는 나락 논은 물론이고 밭 곡식과 자투리 땅, 논둑에 심은 콩까지 알뜰한 여성농민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어찌될까를 생각하게 하는 가을 풍경이다.

부지깽이도 덤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걷이가 한창인 날들인데 요새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한여름 더위처럼 뜨거운 날이 이어지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한파가 찾아왔다. 며칠 전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영하권으로 떨어졌고 10월 중순 기준, 64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가 찾아왔네, 예년보다 보름 이상 빠르게 첫 얼음이 관측되었네 호들갑 떨더니 이른 된서리가 온 대지를 덮었다. 서리 걷히고 나니 오늘 내일하며 미처 거두지 못했던 작물들이 거짓말처럼 타버렸다.

바빠진 농심은 동네 아짐들을 마을 어귀 너른 광장에 모이게 한다. 파랗고 검고 초록인 포장을 깔고 베어 널어둔 콩, 팥가리들을 두들긴다. 도리깨질하던 풍경은 사라져 버렸고 작대기로 두들긴다. 나도 모르게 구부리고 앉은 무릎과 허리도 번갈아가며 두들기신다.

아무래도 기온이 떨어지면 관절의 온도도 낮아지고, 관절 주변의 근육과 혈관이 수축하게 되면서 관절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이로 인해 관절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근육과 관절이 뻣뻣해지는 강직현상이 일어나고 혈액순환도 저하되는 데다 환절기에는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염증이 더 잘 생기게 된다. 이럴 땐 운동을 꾸준히 해주면 관절의 가동범위를 늘려 유연성을 기를 수 있으며, 뼈의 칼슘 축적을 도와 무릎 통증과 관절염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데 일하는 게 운동이라고 억지를 하시는 농민들의 노동은 운동이 아니라 병을 키우는 것이다.

실제로 인공관절 수술 건수는 10월에 크게 늘기 시작해 겨우내 증가한다는데 내가 사는 마을의 아짐들도 유행처럼 무릎 인공관절 수술들을 하셨고 올 겨울에도 두 분이 수술을 하신다고 굽은 허리와 아픈 다리를 끌고 바삐 가을 곡식들을 거두신다.

아직 단풍도 들지 않았는데 한겨울 같은 추위가 찾아오는 생경한 10월을 타고 넘으며 왜 무릎수술은 아짐들만 하는지, 여성농민을 위한 특화된 건강관리 대책이 예산 문제 등으로 좌충우돌하는 사이 골병들어 가는 농촌의 현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예년보다 이르게 홍시가 되어 절반이상이 낙과되어 속상한 대봉감을 따다 몇 년 후 나도 수술대 위에 눕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서글퍼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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