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해서 캔 ‘첫사랑’, 많이들 사드시면 좋겄소!”

  • 입력 2021.10.17 19:3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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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흩뿌렸던 지난 12일 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의 한 비탈진 밭에서 박순애(왼쪽)씨와 일손을 도우러 온 마을 주민이 ‘첫사랑’ 고구마를 캐고 있다. 붉은 빛깔의 황토로 범벅이 된 박씨의 작업복에 눈길이 머문다.
가을비가 흩뿌렸던 지난 12일 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의 한 비탈진 밭에서 박순애(왼쪽)씨와 일손을 도우러 온 마을 주민이 ‘첫사랑’ 고구마를 캐고 있다. 붉은 빛깔의 황토로 범벅이 된 박씨의 작업복에 눈길이 머문다.
한 여성농민이 고구마에 엉켜 붙은 황토를 털어내고 있다.
한 여성농민이 고구마에 엉켜 붙은 황토를 털어내고 있다.
김내숙씨가 고구마 줄기와 엉킨 비닐을 밭에서 걷어내고 있다.
김내숙씨가 고구마 줄기와 엉킨 비닐을 밭에서 걷어내고 있다.
인건비 부담에 재배 면적을 줄였지만 부부가 수확을 감당하기엔 여전히 밭이 넓다.
인건비 부담에 재배 면적을 줄였지만 부부가 수확을 감당하기엔 여전히 밭이 넓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말 그대로 종횡무진, 비탈진 밭을 오르내리며 고구마를 캐느라 온 사방을 누비고 다닌 박순애(70)씨의 옷은 붉은 황토로 뒤범벅돼 있었다. 박씨가 지나온 자리 중간중간마다 쌓여 있는 고구마가 수북했다.

남편인 김내숙(76)씨는 고구마 줄기와 엉켜 밭에 박혀 있는 비닐을 걷어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검은 비닐을 확 잡아당길 때마다 붉은 황토가 사방으로 튀었다. 한 아름씩 모인 비닐은 밭 귀퉁이에 차곡차곡 모았다.

이렇다 할 일손 없이 부부의 힘만으로 700평에 조금 못 미치는 밭에서 비닐을 걷어내고 고구마를 캐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박스 포장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따금 동네 주민 한두 명이 밭으로 올라와 부부의 일손을 가볍게 해주며 말벗이 되곤 했다.

지난 12일 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의 비탈진 밭에서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었다. 이들 부부는 수확 이틀째, 해가 서산에 걸릴 즈음에서야 일손을 멈췄다. 캐낸 고구마를 포대에 담아 트랙터로 운반하는 작업은 내일로 미루고서였다.

예년 같으면 2,000여 평에 달하는 밭에 고구마를 심어 수확할 셈이었다. 그러나 인력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건비가 치솟았다. 게다가 열매가 잘 여물었어야 할 초가을, 햇볕에 고추 말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빈번하게 쏟아진 비에 고구마 품질 또한 덩달아 떨어졌다. 상품보다 중품이 확연히 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예년보다 10만원은 더 줘야 가능하다는 인건비를 부부는 감당할 수 없었다. 박씨의 작업복이 황토의 붉은 빛깔로 염색(?)될 정도로 밭을 누벼야만 했던 연유이기도 했다.

이날 밭에서 캔 고구마 품종은 ‘베니하루카’였다. 지역 농민들 말로 첫사랑 또는 꿀고구마로 통하는 품종이었다. 흩어져있던 고구마를 갈무리하던 박씨는 “우린 늘 ‘첫사랑’이라 부르제. 그만큼 달콤하고 맛난께. 보관했다가 먹으면 더 좋고”라고 귀띔했다.

이들 부부도 ‘첫사랑’ 특유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고구마를 포대에 담아 창고에서 어느 정도 숙성 과정을 거친 뒤 판매에 나선다고 했다. 이틀에 걸친, 치열한 일과를 마치고 밭 귀퉁이에 벗어 놓은 신발을 찾아 움직이는 박씨가 말했다.

“농사짓느라 욕본 거 생각하믄 3만원(10kg)은 받아야 쓴 디 얼굴이 이삐야 값을 잘 주지 않겄소(웃음). 그래도 달달한 맛은 보증한 게 많이들 사드시면 좋겄소.”

이틀에 걸친 고구마 수확 작업이 마무리돼 가고 있다.
이틀에 걸친 고구마 수확 작업이 마무리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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