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부당함에 무덤덤해져선 안 된다

  • 입력 2021.10.17 18:00
  • 기자명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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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알려지는 것과 사실관계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주변이 무덤덤한 것으로 보아서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탄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정부가 발표하고 언론이 짧게 옮기는 내용으로는 첫째, 정부의 예측과 달리 ‘올해 세금이 유난히 많이 걷히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지난해 8월쯤 정부가 올해의 세수를 예측하고 2021년 예산을 수립했는데 올해 상반기 정부의 세금 수입이 예측보다 상당히 초과했다는 발표를 했다. 무려 10%가 넘어가는 세금을 더 거둬들였는데도 세금을 많이 낸 쪽에선 별 반응이 없다.

둘째 지난달 말 기준으로 ‘수출이 아주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만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역수지의 흑자 폭은 사상 유례없는 내역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내용은 상당한 국내의 풍요를 뜻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가 풍요로워져서 그런지 그 분야 또한 매우 조용하다.

마지막으로 세수의 증대와 무역수지의 흑자가 유례가 없는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가운데서 비율로는 농업 예산이 전체 예산의 3% 밑으로 떨어지고, 더해 상대적으로는 정체하고 있음에도 역시 ‘현장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월에 농촌에서 얻는 정보나 도시에서 얻는 정보 간에 그리 큰 차이는 없겠지만 정보를 이용하고 우리 사회의 재화를 이용하는 가치에는 큰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서 생성되는 여러 재화와 정보들은 지난 시간보다 더하게 활용도에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그 활용도의 차이를 줄여주는 게 국가의 역할로 보이는데, 그 앞길의 재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의 몫인지 도대체가 움직임이 더디다.

세수가 늘어 정부의 재정이 좋아지면, 정부는 정부의 빚을 갚거나 사회 간접재화에 투자 진행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무역수지가 좋아져서 민간의 풍요가 한쪽으로 몰려가면 그 내역들을 조정해 가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로 보인다. 그런데 어디선가 막힌 느낌이다. 이런 시간들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여러 부작용을 불러오게 된다.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이런 흐름에서 우리 사회는 산업적으로 취약한 부분, 구성원들 중에서는 미래를 책임질 구성원에 대한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아마 그런 고민과 전망을 내는 인적 자원이 정부 내에 구성돼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풍요로운 시기에 어려울 때를 대비하지 않는 것은 그 풍요의 짧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과 같다. 농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갑갑하기까지 한데, 원인을 분석해보면 어려운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것을 당당히 거부하지 못하고 바로잡지 못하는 데도 일부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농민들도 당당하게 부당한 내용들을 현장에서 거부하고, 바로 잡는 일에 동참하고 자기 몫을 오롯이 챙기려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늘 예측하지 못하는 수지에 기대고 다른 손실들이 두려워 끌려가는 현실을 거부해 버리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필자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오래전 타협한 일이 있다. 농경지 주변의 과수원을 누군가 법인 이름으로 구입을 했다. 농경지가 거래되고 난 뒤 알게 된 과수원 구입자들은 한 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잘 지내 보자”는 말에 특별히 못 지낼 이유도 없어 ‘그러자’며 인사를 나누고 지내게 됐다. 인사를 나눈 후 “직접 농사를 지을거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누군가에게 임대줄 것이냐”고 물어봤다 “임대를 줄 예정”이라고 하길래 누구에게 임대를 주건, 주변 농민에게 임대를 주면 장기로 해주고 과수원이니만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경작자를 바꾸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상 경작하지 않을 사람, 그 법인이 농지를 구입한 것을 묵인·동조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보니, 그 법인은 1년 단위로 임차료 내용을 바꿔 가며 경작자를 갈아치웠다. 첫 경작자부터 바뀌는 경작자들 전부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땅이 없는 농민들로서 당장 아쉬움에 땅 주인에게 굽히는 것이 이해됐지만 차마 공개하기 힘든 하나의 과정을 더 거치고 나니 경작하기 정말 좋았던 그 과수원은 지금 칡넝쿨로 뒤덮여 묵은 과수원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농지를 취득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농지를 취득했고, 이웃한 필자는 묵인했다. 결과적으로 여러 영세 농민들이 희롱을 당하고 농지는 개간해야 할 수준이 돼 궁극으로는 손실이 크게 발생하고 말았다.

우리 주변에 흔히 생기는 이러한 내용부터 바로잡아 가는 게 현장에서 헌법을 지키며 당당히 사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당함에 무덤덤해지는 사회는 탄력을 잃어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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