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의사와 무관한 농지전용에 물 건너간 ‘공익직불금’

‘서부내륙고속도로’ 실시계획 고시 위해 ‘용도 변경’된 농지

계약·보상 안 이뤄져 영농 지속 중이나 직불금 대상서 제외

농민 “강도도 주머니 든 것만 뺏지 그 이상 안 뺏는다” 분통

  • 입력 2021.10.17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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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2일 전라북도 익산시 상당면 대선리 일원의 서부내륙고속도로 예정 부지. 용도는 변경됐으나 여전히 영농이 진행 중이며 수일 내 수확을 앞두고 있다.
지난 12일 전라북도 익산시 상당면 대선리 일원의 서부내륙고속도로 예정 부지. 용도는 변경됐으나 여전히 영농이 진행 중이며 수일 내 수확을 앞두고 있다.

 

서부내륙고속도로 도로구역 결정 및 실시계획 승인·고시를 위해 2단계 공사 예정 구역(충남 부여군~전북 익산시 40km 구간) 내 농지가 지난 5~6월경 전용됨에 따라 해당 농지를 여전히 경작 중인 농민들이 직불금을 지급 받지 못하게 됐다. 전라북도 익산시만 하더라도 관내 1,648필지가 전용됐으며 그 면적만 129ha에 달하는 실정이다.

김지호 익산시농민회 성당면지회장은 “지난 3월 직불금 신청을 했는데, 6월쯤 면사무소로부터 내가 농사짓는 농지가 직불금 지급 대상 농지가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농지가 전용된 사실을 그때 알았다. 지금도 열심히 농사짓고 있는 농민에겐 알리지도 않고 국토교통부가 동의도 없이 서부내륙고속도로 공사를 위해 지난 5~6월경 농지를 전용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며 “농민들 대다수는 여전히 토지 수용이나 보상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안내받지도 못한 채 영농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직불금은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특히 재배면적이 줄어듦에 따라 소농직불금조차 받지 못하게 된 일부 농민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며, 만약 보상이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면 직불금뿐만 아니라 내년 농민수당 지급 등에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행정에 따르면 익산시 내에서도 가장 많은 농지가 전용된 곳은 성당면이다. 면사무소 관계자에 의하면 현재 면민 대다수가 논농사를 짓고 있지만 345필지 63ha의 농지가 용도 변경돼 버렸다. 이는 면내 전체 농지 면적인 619ha의 약 10.2%에 해당되는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어떤 농민은 지급을 위한 재배면적 0.5ha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소농직불금조차 받지 못하게 됐고, 다른 어떤 농민은 1,200평 논 한 필지가 5개로 나뉘며 사업 예정지에 속한 구간만 일부 전용돼 해당 필지의 나머지 8평에 대한 면적직불금만 받게 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한 상황이다.

이후 농민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 해당 내용에 대한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에 이관했으며, 농식품부는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공익직불법)」 제8조 제2항 2호에 따라 농지전용 허가를 받거나 농지전용 신고를 한 농지, 농지전용 협의를 거친 농지는 직불금 지급대상 농지에서 제외토록 규정하고 있다”고 답변을 내놨다.

사업 발주처인 서부내륙고속도로 주식회사에 따르면「도로법」제29조 및「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제17조,「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등에 근거해 국토교통부는 지자체 등과 협의를 거칠 경우 소유주 동의 없이도 농지를 전용할 수 있다. 농지전용 없이는 도로구역 결정 인허가나 실시계획 승인·고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부내륙고속도로 주식회사 관계자는 “농지전용의 경우 기반사업 추진을 위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요소이고, 주민 의견도 지난 2019년 4월경 청취한 바 있다. 농식품부와 수차례 협의했고 농지전용이 됐더라도 공익직불법 제8조 제2항 6호를 유연하게 해석하면 직불금 지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사업구간이 40km 이상으로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예산이 편성된 이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보상 절차가 이행될 예정이다. 상황에 따라 내년 이후까지도 보상이 진행될 수 있다”고 전했다.

공익직불법 제8조 제2항 6호는 ‘국토개발법이나 산업입지법, 택지개발촉진법 등에 따라 지구·지역·단지로 지정된 토지라도 기본형 공익직불금 등록을 신청하려는 연도의 직전 연도까지 보상을 받지 않았고 농식품부 장관이 1년 이상 농업에 이용할 수 있는 농지 등으로 인정하는 경우 기본직접지불금 지급대상 농지로 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서부내륙고속도로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농민들도 해당 농지가 도로구역으로 지정됐더라도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고, 지금도 수확 등 영농작업이 진행 중이며 보상 이후로도 공사 진행 전까지 한동안은 영농에 농지를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직불금 지급대상 농지로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농식품부 공익직불정책과 담당 주무관은 “서부내륙고속도로 실시계획 고시를 위해 농지가 전용된 것은 사실이나, 공익직불법 제8조 제2항 2호에 따라 전용된 농지에는 직불금을 지급할 수 없다. 이는 강제규정이고, 6호와도 아무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중복 적용하거나 유연 해석한다고 해도 직불금을 지급할 수 없는 문제다”라며 “내부적으로 수차례 회의도 했고, 법률 자문도 받았으나 공익직불법에 예외를 두게 될 경우 균형이 깨질 수 있어 지금으로서는 보상 절차가 빨리 진행되는 방법밖엔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김지호 성당면지회장은 “서부내륙고속도로 사업을 반대하기 위함도, 보상금을 많이 받으려는 목적도 아니다. 농지 감정평가에 따라 주는 만큼만 보상받을 거다. 다만 보상 절차가 진행되기 전까지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은 영농활동을 지속 중인 만큼 그저 당연히 받아야 할 직불금을 지급해달라는 거다”라면서 “전용된 농지 중엔 몇 년을 공들여 인증받은 친환경 필지도 있는데, 아무리 국가사업이라고 해도 사유지를 맘대로 전용하고 직불금까지 못 받게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보상이 내년에 끝날지 내후년에 끝날지 몰라 다들 불안해하는 만큼 농식품부나 국토관리청, 서부내륙고속도로 주식회사 등 관계기관과 이해당사자인 농민이 직접 협의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부내륙고속도로 2단계 공사를 위한 농지전용으로 지급되지 못한 직불금은 약 6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농민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는 대로 직불금 지급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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