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염전·소금장수⑥ 깨소금 만드는 법

  • 입력 2021.10.1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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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소금장수가, 묵고 있던 주막에서 떠날 채비를 한다.

-주모, 그 동안 잘 지냈습니다.

-소금 다 팔았능교? 아이고, 그 곡식 자루들을 우에 가져 갈 낍니꺼?

-허허허, 지게 목발이 부러지도록 곡식이 더 많았으면 좋겠소이다.

그 때 동네 아낙이 급히 주막으로 들어선다.

-소금 사러 온 기 아이고예, 혹시 녹두 받은 거 있으면 좀 사러 왔는데….

-아, 마침 녹두 한 됫박 받아 놓은 거 있어요. 팥도 두어 되 되는데 필요하면 사가시지요.

이렇듯 소금장수는 소금과 바꾼 곡식들을 묵고 있던 주막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곧바로 팔기도 했으나, 대체로는 인근 장터의 곡물가게에 가져가서 돈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처럼 힘들게 장사를 해서 번 돈을 엉뚱한 데에 탕진하고서 빈손을 털고 만 소금장수들도 있었다. 주막거리엔 소금장수뿐 아니라 상 장수, 옹기 장수, 병풍 장수, 체 장수, 옷감 장수…등 온갖 행상들이 다 모여들었다. 어울리다 보면 그중 누군가가 “모처럼 같은 주막에 들었으니 막걸리 내기 투전이나 한 판 합시다” 이런 제안을 하게 마련이고…그들 중 전대에 돈푼이라도 쟁여둔 장사치들 몇이 주저주저하다가 이윽고 투전판에 둘러앉는다. 경상도 안동 출신의 소금장수였던 권국선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투전을 어떻게 하느냐면, 그림이 그려진 손가락 너비의 두꺼운 종이를 투전꾼들에게 일단 다섯 개씩 나눠줘요. 그 종이엔 각각 숫자가 씌어있는데, 세 개의 수를 합해서 10이나 20을 만든 다음, 나머지 두 장의 끗수로 승부를 가리는…그러니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뒷날 화투판의 ‘짓고 땡’하고 같은 노름이라고 보면 돼요.”

노름판을 접고 나면 돈을 딴 사람이야 “아이고, 난 겨우 본전치기나 했네” 하며 일찌감치 일어서버리고, 패자들은 허탈하게 남은 술을 들이켠다. “두 번 다시 투전판 기웃거리면 사람도 아니다” 따위 허튼 맹세를 해보지만, 뒷날 또 다른 주막에 들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렇게 투전판에서 종자돈까지 털리고 돌아가는 소금 장수가 있었는가 하면, 그야말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소금장수도 있었다.

소금장수가 어느 마을에 들어가 소금을 거지반 팔았는데 그만 날이 저물고 말았다. 그 마을엔 주막도 여관도 없다. 그렇다고 면소재지나 읍내로 나가기엔 때가 이미 늦었다. 뉘 집에 가서 잠자리 동냥을 해야 될 처지인데, 한두 번 들른 마을이 아닌지라 들은 소문이 있었다. ‘저 쪽 개울건너 느티나무 아래 초가집에 과부가 혼자 산다고 했으렷다?’

소금장수가 개울을 건너 느티나무 아랫집 사립문을 밀고 들어선다.

-쥔장 계시오? 소금장수올시다!

-아, 소금장수 양반이시네요. 우리도 소금이 떨어져서 사기는 사야겠는데….

-오늘 이 마을에 왔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마땅히 묵을 데도 없고 해서 왔소만….

-안 됩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동네 사람들한테 무슨 말을 들으려고….

-거 참, 인심 한 번 야박하네요. 배고파 죽겠는데 밥 한 술 못 주겠단 말씀이오? 어흠, 남은 밥 있으면 한 상 차려오시오. 밥값은 소금으로 넉넉하게 드리리다.

소금장수가 대뜸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주저하던 여인이 ‘밥만 먹고 나가는’ 조건으로 밥상을 차려 들여온다. 사내와 여인이 밥상에 마주 앉았다. 여인이 바가지에 반쯤 찬 참깨를 소금 값으로 내온다. 남자가 자루에 남은 소금을 고봉으로 한 되 가져와서는 여인 앞으로 내민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남자가 갑자기 소금 됫박을 참깨 바가지에다 탁 부어 섞어 버린다.

-아니, 소금하고 깨를 섞어버리면 어떡하라고….

-어허, 이렇게 섞어야 고소한 깨소금이 되는 법, 우리도 오늘 밤에 깨소금 한 번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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