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사가 싫어서

  • 입력 2021.10.17 18:00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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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추석에 모처럼 고향에 내려갔다. 땅끝마을 언저리 어린시절을 보냈던 고향땅의 냄새를 채 들이마시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시에서 내려온 자식들까지 합세해 밭일에 매진하고 있는 농촌 풍경이었다.

어렸을 때 틈 나는대로 호출돼 농사일을 거들었던 악몽이 떠올랐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추석이고 뭐고 바빠 죽겠는 농촌에서 내 휴식의 권리를 박탈당하기 직전이었다. 고향행을 택한 과거의 나를 탓하며 몸빼바지로 갈아입고 긴 고무장화를 신었다.

간만에 모인 우리 가족은 해가 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태풍 때문에 못 심었던 배추 모종을 심었다. 다음날에는 땡볕 아래에서 전날 못다한 배추작업을 마무리하고 분수호스를 설치했다. 동네 할머니들까지 불러 왔지만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매년 명절이나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버텼던 이유는 ‘농사가 싫어서’였다는 것을. 대학교 때 농활(농촌활동) 대신 한 학기 동안 봉사하기를 선택한 인간이 나다.

그런데 <한국농정>에 입사한 후 거의 매주 농촌을 방문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곤 산과 하늘, 논밭 그리고 들개 몇 마리가 전부인 고향과 닮아 있는 곳에서 농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수입농산물, 오르는 기자재나 비료값은 어제오늘 뉴스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위축과 인력난에, 가격이 폭락한 품목의 경우 생산비조차 건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농민 당사자의 노동시간은 언제나 생산비에서 제외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농사는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농사일은 주말 없이 항상 바빴지만 농사지어 번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켰다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 얘기가 아니었다. 취재를 다니면서 그 생각은 더 강해졌다. 농민들은 얼마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태로 농산물을 올려보낸다. 마트에선 비싼데 농민에게 돌아가는 돈은 적다. 가락시장에서는 1초만에 가격이 결정되고, 유통 수수료를 빼면….

나는 농사가 싫다. 추석 연휴 내내 밭에서 일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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