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기 끝나지만 앞으로도 가만있지 않을 것”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 입력 2021.10.10 18:00
  • 수정 2024.02.19 09:11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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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개혁을 위해 앞장서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였던 인물로 ‘백혜숙’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2018년 11월 12일을 시작으로 숨가쁘게 돌아갔던 백혜숙 전문위원의 공사에서의 시간이 다가오는 11월 11일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서울 가락시장 내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3년동안 방방곡곡 바쁘게 뛰어다녔던 백혜숙 전문위원을 만나 그간 있었던 일들과 임기 끝을 앞둔 소회를 들어봤다.

대담 심증식 편집국장·정리 김한결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나.

친환경 도시농업 전문위원으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공사)에 들어가 친환경농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락시장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가락시장에 친환경농산물이 거래된다면 친환경농업이 훨씬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해극 한국유기농업협회장이 손을 꼭 붙잡고 가락시장에 친환경 공판장을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취약계층도 유기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가락시장에 친환경 직거래소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거래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시장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거래제도뿐 아니라 경매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지역상생토크’라는 이름으로 17번에 걸쳐 전국의 농민들을 만났다. 농민들에게 경매회사들의 독점적 수탁거래와 시장도매인 같은 거래제도 다양화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을 다니면서 농민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농민들로부터 경매 비리나 애로사항에 관한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가 많아 공사에서도 핫라인 전화번호를 개설했다.

특히 재경매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경매가 끝나고 가격이 정해진 상태에서 새벽에 가격을 조정하자며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명백한 위법이다. 공사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어서 도매법인에 시정조치를 했고 그 이후 재경매에 대한 불만이 많이 줄었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도 필사적으로 농민들을 만나러 다녔다.

가락시장은 기울어진 것을 넘어 뒤집어진 운동장이다. 농민이 얼마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농산물을 올려보낸 후 주는대로 받는 전근대적 거래 방식에 분노가 치밀었다. 현장에서 찾은 답을 토대로 창의적인 방법을 더해 가락시장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현재 1조48억원의 규모로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이 진행 중인데 유통법인들은 돈 한 푼 안 내고 시설을 사용하면서 거래금액의 0.55%만 내면 되는 구조다.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기득권 유통법인에 혈세가 투입된다. 이렇게 불공정한 가락시장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현장에서 농민들이 소비자와 만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가락시장 청과동 3층에 ‘가락 먹거리융합클러스터’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생산자조직과 함께 생산의 문제를 사회적경제와 같이 풀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이곳에 공유주방이 만들어질 예정인데 다양한 먹거리 연결모델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가락시장 내 처음으로 생산자조직을 만들었다.

가락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시장 안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관리하고 상장예외품목을 지정하는 시장관리위원회 안에는 생산자가 없다. 오로지 유통인들로만 구성돼 있다. 생산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생산자들로만 이뤄진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가락시장품목별생산자협의회를 만들었다. 가락시장에서 이뤄지는 여러 활동들, 특히 시장도매인 도입과 같은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시장도매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자고 하면 경매제를 없애자는 거냐고 물어본다. 경매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시장도매인을 도입해서 유통주체간 경쟁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특히 시장도매인은 여러 측면에서 효율성을 가져온다. 정책토론회와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시장도매인 도입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에게 시장도매인에 대해 설명했고 박흥식 의장이 농특위에 전달해 농특위에서도 공익형시장도매인만큼은 관철시켜야겠다는 입장을 밝혀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무르익은 상태다.

또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승인이 안 나와도 개설자가 시장도매인을 도입하려 한다면 보고 후 도입할 수 있게 하는 농안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그것이 통과되면 (시장도매인이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에는 윤재갑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찬성 서명지 전달식을 했다. 사회적 분위기 상 (개정안이) 곧 통과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최근 도매법인 측에서 반발이 심하다. 기득권 카르텔이 워낙 견고해서 불안감은 있다.

가락시장 경매 독점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자치분권시대에 중앙집권적인 관료주의가 문제다. 특히 농식품부는 11개의 중앙도매시장을 지정해 쥐락펴락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조차 농식품부 관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총체적인 기득권 카르텔이 문제다. 농민은 점점 줄어드는데 관료 조직은 늘어난다. 관료주의를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관료들이 중앙에 있을게 아니라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현장과 동떨어진 농정은 있을 수 없다.

또한 기득권 카르텔 근간 뒤에는 농협이 버티고 있다. 농협은 33개 공영도매시장에 들어가 있으면서 하나로마트까지 운영하고 있다. 거래제도상 하나로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것은 시장도매인으로 납품하는 것과 유사하다. 농협은 경매와 직거래를 병행하고 있으면서 그것에 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락시장에 새로운 거래제도가 도입되면 경매제 독점에 균열이 생겨 궁극적으로는 농협을 개혁하는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열린 '공영도매시장 거래제도 개혁을 위한 농안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공사에서의 3년을 평가한다면?

보람도 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공존한다. 밑에서 10년 노력한 것과 한 달 동안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맞먹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기 때문에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지난 총선에 비례대표에 출마한 것도 후보자로 나서면 이야기를 들어줄 거란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임기는 끝나지만 앞으로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유통문제가 바뀌면 우리나라의 농업 및 먹거리문제가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한 33개 공영도매시장 개편방안’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박사논문을 쫙 뿌려 계속해서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알리고, 기회가 되면 지금의 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갈 것이다. 가능하다면 최초의 여성 농식품부 장관이 돼서 다 바꿀 것이다(웃음).

농민들에게 가락시장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달라.

가락시장이라고 해서 모든 농산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물량이 몰리는 곳에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사과는 안동에서, 참외는 성주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가락시장이 수도권 대소비지에 위치해 있고 16만평의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최고가격이 형성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과거 용산에서 ‘가격 후려치기’ 하던 시절 가락시장에 경매제가 도입되면서 홍보가 많이 됐다. 그때의 환상으로 최고가를 받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가락시장에 출하하지만 소농이면서 첫 출하자에게는 값을 제대로 안 쳐준다. 대량으로 물량을 가져와 지속적으로 거래를 하는 출하자에게 어느 정도의 최고가를 주고, 전략적으로 최고가를 줬다가 뺐기도 한다.

또 경매는 품질을 보지 않는다. 그날 물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지고 물량이 적으면 올라간다. 도매시장에서 수급조절이나 물량조절의 기능은 전혀 없다. 유통은 내버려두고 산지에서 수급조절을 하라는 것은 농식품부가 농민들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처사다.

심지어 33개 지방도매시장에서는 법인들이 가락시장에서 낙찰받은 물량을 ‘전송’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으로 가져가 재경매 후 되팔기를 한다. 지방에서는 가격발견을 할 수도 없다. 도매시장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가락시장이 어떻게 변화돼야 하나?

경매방식은 전염병에 굉장히 취약하다. 가락시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에서는 7월에 한 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이 전부다. 시장도매인은 경매 없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긴밀하게 연결해서 수급조절을 한다. 경매처럼 다같이 모일 필요가 없어 코로나19가 전염될 우려가 없고 확진자가 발생했다 해도 빠르게 방역조치가 가능하다.

기후위기 시대 농산물가격은 폭락하고 수입산이 밀려들면서 농민 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거래제도를 바꾸는 것이 답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농식품부 장관 한 사람 때문에 모든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탄소중립시대에 걸맞게 우리 삶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공공의료처럼 먹거리도 공공식료 개념으로 국가가 나서야 한다. 꼭 필요한 빅데이터 통계를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생산-유통-소비-폐기가 하나의 순환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공공식료 시대를 열어야 한다.

농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유통을 들여다봐야 한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기 위해선 소비자, 사회운동가, 사회경제조직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영도매시장이 빠진 푸드플랜은 반쪽짜리다.

주류를 바꾸지 못하면 대안적인 유통도 활성화될 수 없다. 주류를 포함하지 않으면 먹거리통합지원센터, 공공급식도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지역푸드플랜에도 반드시 공영도매시장이 들어가야 한다. 공공농업, 공정유통, 공공급식을 하나로 연결해서 공공식료 시대라는 커다란 틀을 짜야 한다. 그 큰 틀 속에서 모두가 농업문제와 먹거리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또한 농업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도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를 위한 소비를 실천해나가면서 기후농부가 될 수 있다. 모두에게 공공식료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인식을 갖고 기후농부가 돼서 동참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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