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세상 물정의 중심은 낮은 데에 있고말고

  • 입력 2021.10.02 10:15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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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일전에 모임이 있어서 한 언니를 태워서 약속장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귀농한 지 8년 남짓 된 언니, 중년 언니들의 로망인 연금을 타는 남편과 사는데도, 어찌나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지 주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귀농하면서 택한 작목이 고사리입니다. 새싹이 눈을 틔우는 이른 봄부터 늦봄까지 고사리를 꺾는데, 고사리를 꺾는 시간보다 사이사이의 풀을 매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합니다. 그렇게 첫 정을 들인 고사리 농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며 애지중지 농사를 짓습니다.

그렇다고 고사리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닙니다. 참깨며, 단호박, 시금치 등 손이 많이 가는 농사도 가리지 않고 논밭을 놀리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그런 언니가 일전에 만났을 때, 투명테이프로 손가락 끝마디를 싸매고서는 다른 손가락으로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얼핏 반창고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붙였나 싶었는데, 상처 난 곳을 너무 열심히 주무른다 싶어 얼마나 다쳤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다친 것이 아니라 손가락 마디에 관절염이 생겨 손가락이 틀어져서 이러면 좀 펴지려나 하는 마음에 그런다고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세상에나, 이 거룩함, 이 숭고함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유난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주어진, 또는 맡겨진 일을 사랑하며 불같이 해내는 언니들이 마을마다 있습니다. 이런 언니들은 통도 크고 관대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 속에서 얻은 삶의 지혜가 쌓였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봐도 날 때부터 관대한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날 때부터 관대한 사람은 필시 무심한 사람이겠지요.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면 그야말로 관대하기 딱 좋습니다.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도 관대함이 있다면, 그것은 학습되었거나 스스로 깨우친 것이겠지요.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 공감을 잘 하더라도 그 자리가 대접받는 위치에 있다면 절대 가질 수 없는 품성이지요. 누군가가 위해주지 않기에 스스로 찾은 관대함과 자존의 길, 거기에 여성농민만의 고귀한 성정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명이 있는 존재가 살아가려면 매 순간이 전쟁일 수밖에 없다지요? 제아무리 고상한 척, 우아한 척해도 누군가가 더 치열하게 살아서 생긴 잉여를 취하지 않고서 여유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인데, 암요, 대자연에 놓인 채 한 생명으로 살게 되면, 죽기 살기로 덤비겠지요. 그러니 불평등에 눈을 감아서 안 되는 것이겠지요. 누군가의 퇴직금 50억원에 분노가 생기는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그 분노가 정당하다면 대다수 농업의 현주소와 농민의 삶에 대해서도 응당 공분할 줄 알아야 할 일입니다. 허리가 굽고 손마디가 휘는데도 농사를 사랑하며 하염없이 돌보는 그 힘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사회적으로 대접을 해야 하겠지요.

이제 또다시 농사철, 때맞춰 거둬들이고 때맞춰 파종하려고 몸고생 보다 마음고생이 더한 철이지요. 날씨라도 받쳐주면 좀 나을 텐데, 요즘 날씨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고, 이상기온의 강도도 너무 셉니다. 이 철에 여성농민들은 훨씬 잰걸음과 잦은 손놀림을 하고, 마음 부침이 큽니다. 비교적 조용하던 농가들도 이맘때에는 고성이 오가는 집들이 많습니다. 마음은 다급한데 일은 처지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보면 실수도 잦아지지요. 그럴 때면 잘못한 것 없이 욕을 먹는 쪽은 여성농민들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쌓여 농업이 완성되어온 것이지요. 이걸 모르면 세상 물정을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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