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염전·소금장수④ 출동! 연백염전에 소금 털러 가다

  • 입력 2021.10.02 00: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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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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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석모도에서 배를 띄워 황해도 연백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이 모두 소금을 ‘팔러’ 갔던 것만은 아니었다. 6.25 전쟁이 터지자 석모도로 피란 내려온 연백 사람들은, 며칠 동안 난리를 피했다 돌아갈 양으로 별 준비 없이 단출하게 내려왔던 것인데, 예상과 달리 전황은 점점 더 격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렇게 되자 호구지책이 막막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혀버렸고…그렇다고 이대로 굶어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남에서 굶어 죽으나 이북에 올라갔다가 잡혀 죽으나 매일반 아니갔어. 고향 마을에 숨어 들어가서 뭣이든 가지고 나옵시다.

-이 전쟁 통에 위험을 무릅쓰고 연백에 건너간들 가져 올 거이 무에 남아 있갔어?

-연백염전에 지천으로 쌓아놓은 소금이야 그새 없어지지는 않았을 거이니까, 우리끼리 특공대를 조직해서 석모도 선착장에 있는 배를 빌려 타고 당장 북으로 갑시다.

-그러자우. 전쟁이 길어질수록 소금이 쌀보다 비싼 세상이 될 것 아니갔어. 당장 섬 주민들한테 가서 삽하고 곡괭이하고 소금 담을 빈 가마니를 구해오도록 하자우. 까짓것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라고.

혈기 방장한 연백출신 남자들이 연백염전을 습격하기 위한 결사체를 조직했다. 저물녘, 일부 석모도 주민들이 합세한 ‘피란민특공대’가 풍선을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강화에서 바로 건너다 뵈는 불당포라는 곳에 연백염전의 소금 야적장이 있었어요. 연백염전은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까 소금 창고가 따로 없이 그냥 야적을 해놨어요. 소금 생산을 하지 않는 가을철이 되면 그 거대한 소금더미의 표면이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려요. 그 거죽을 깨고 들어가 소금을 파내야 하니까 곡괭이와 삽을 준비해 간 거지요.”

드디어 배가 불당포 선착장에 닿았다. 각자 연장을 챙긴 특공대원들이 서둘러 소금더미를 향해 야간 기습작전에 돌입했다. 자정 안으로 소금을 배에 실어야 날 밝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작전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했다.

소금더미의 표면은 워낙 단단해서 힘센 장정들의 곡괭이질에도 쉽게 깨지지 않았다. 한참 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야, 이쪽 소금더미 거죽 깨졌어. 자루 갖고 와서 삽으로 빨리들 퍼 담으라우!

그들은 마치 무슨 야간 고분 도굴단처럼 소금더미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는 신속하게 자루를 채워 짊어지고 나왔다. 그런데 ‘소금산’을 막 벗어날 즈음에 누군가 “인민군이다, 도망쳐!”라고 외쳤고, 각자는 죽을힘을 다해 선착장으로 내달았다. 총소리가 두어 번 울렸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하지만 타고 왔던 배에 오르고 보니 세 명이 안 보였다. 잡혀간 것이다.

“인민군 해안 경비병한테 붙들린 게지. 그렇게 위험한 일이었는데도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그 야간 작전을 했어. 왜냐고? 싣고 오기만 하면 소금이 불티나게 팔리거든. 난리 통에 피란 가서 풀죽을 끓여 먹더라도 소금은 없으면 안 돼. 소금이 비상식량인 거라.”

그러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자, 내가 굴속으로 들어가서 파낼 테니까니 자네들은 부지런히 가마니에 담으라우!

‘남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앞장서서 소금 굴속으로 들어가 곡괭이질을 하고 나머지는 그가 굴속에서 끌어낸 소금을 삽으로 퍼서 자루에 담고 있었는데….

-어어, 빨리 나와! 소금더미 무너진다!

-큰일 났다! 남일이가 소금더미에 깔렸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소금을 훔치러 갔다가 도리어 귀한 목숨을 도둑맞고만 그 사건은, 이후 어유정 마을 실향민들에게 두고두고 전쟁의 비정함을 아프게 일깨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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