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대통령의 농정 철학

  • 입력 2021.09.19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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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대통령이 되려면 만능 철학자여야 할까? 정치 철학, 예술 철학, 과학 철학 등 모든 부문에서 철학을 갖춰야 할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름지기 농민들은 최소한의 농정 철학을 갖춘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농정 철학은 철학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농업은 우리 사회 내 한계산업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다. 그래서 대통령조차 관심을 갖지 않으면 누구도 관심이 없다. 지방에서도 시장, 군수가 관심 없는 사안은 관료들도 신경 쓰지 않는다. 때문에 대통령의 농정 철학이 빈곤하거나 부재하면 이때부터 농정은 관료들의 손에서 관행적으로 처리돼 버린다. 농정 철학이 빈곤한 상태에서, 선거캠프가 급조해 준 대통령 후보의 약속이 뒤에 공약(空約)으로 끝나고 마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봐 왔나.

대통령의 농정 철학은 국민경제에서 농업 미래에 대한 비전과 의제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농정 방침이나 시장·군수의 농정 시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농정 비전에서 농정 목표와 내용이 정해지고 농정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의 농정 철학은 농업·농촌이 갖는 사회경제적 가치와 공익적 가치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농업·농촌·농민을 수단으로 보느냐, 목표로 보느냐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신자유주의적 개방농정을 해서 우리 농업은 피폐해졌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진보적 성향이라고 하는 정부가 시행하는 소위 그린뉴딜에서도 대표적인 녹색산업인 농업은 배제됐다. 오히려 농지를 침해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 사업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런 것이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농업이 대통령의 농정 철학 경계 밖에 밀려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대통령의 농정 철학은 곧 국민들의 식량주권과 생명권, 안정적 경제안보의 토대다. 농민 유권자 수나 농업 부가가치액 이상으로 농업·농촌에 다양한 공익적 가치가 있음을 아는 것이 곧 대통령의 농정 철학의 바탕이 돼야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 농정 철학의 구체적인 구성요소는 무엇일까. 첫째, 농업문제다. 식량자급률 목표치와 이를 가능하게 할 농지보전 총량 목표제, 농지투기 근절책, 경자유전과 농지 농용의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부동산투기 망국론도 기억해야 한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1.7%, 밀 자급률은 1.2%다. 우리나라와 경제력 수준이 비슷한 나라치고 이런 식량지표를 가진 나라는 없다. 호주는 260% 이상이고 선진국 그룹 평균치는 100% 이상이다. 이러한 지표를 가지고도 국민소득(GDP)이 많다고 우리나라를 선진국, 국민국가라고 할 수 있나? 곡물자급률 목표치를 당장 단기 30%, 중장기 40%로 설정해야 한다.

지금 인류는 기후위기라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이때 가장 적합한 영농형태는 바로 친환경-저탄소 생태농업이다. 이 영농을 도입·확산해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2050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농업기술을 개발하는 등 농정 전환을 해야 한다. 지역 내에서 ‘자연-밥-똥-자연의 생태적 순환’ 속에서 인간의 생존과 영성을 찾아 모시는 정신을 실천하려는 것이 곧 생명농업이고 기후위기 대응농업이다. 온 생명의 순환 속에서는 인간도 하나의 일원일 뿐이다.

둘째, 농촌문제의 핵심어는 지방(농산촌)소멸로 축약된다. 농촌에 늘어나는 ‘빈집’은 그 상징이다. 농촌공동체를 복원하고,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이 문제는 더욱 촉진될 것이다.

셋째, 농민수당이나 공익형 직불제는 농가소득 안전망이다. 이는 농민을 공익적 가치 지킴이로 대우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를 법제화하고 재원 마련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밖에도 기타 생산자-소비자 공동체 연결고리로서의 소비자 주권 즉, 식품안전에 대한 법제 마련, 가족농-고령농-청년농 등이 도시민과 상생할 수 있는 직거래 도-농교류 방안, 농특위에 현장 농민의 의견이 직접 반영될 수 있는 협치 농정체계 구축도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무논에 첨벙첨벙 맨발로 들어가 농민들과 모내기를 하고, 농민들과 논두렁에 앉아 새참을 먹는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 기계화·자동화 영농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 진전돼 스마트팜과 인공지능(AI)이 장착된 로봇들이 농사를 짓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아예 농촌 현장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농업현장을 아는, 농정 철학이 있는 대통령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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