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퇴근과 출근의 시차

  • 입력 2021.09.12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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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대파밭의 풀을 뽑다가 해가 지면 다음 날 시작해야 할 자리를 표시해 두고 퇴근을 한다. 시장에 들러야 하는데 어두워진 시간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마트로 들어간다. 제육볶음용 돼지고기와 콩나물을 바구니에 담아서 계산대에 올린다.

“이제 가서 언제 밥을 차릴까요?”

낯익은 계산원이 동병상련의 위로 한마디를 건넨다.

“그러게 말이요.”

30년을 같이 산 남편한테 듣지 못하는 위로를 친분을 쌓아본 적이 없는 다른 여성한테 들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결혼한 여성은 1시간 늦게 출근하고 1시간 먼저 퇴근한다(황석영, <사람이 살고 있었네>)던 그쪽 세상이 새삼 부럽다. 1시간이면 반찬을 서너 가지는 할 수 있을 텐데. 밥상 차리기 전에 집 안 청소를 대충 할 수도 있으리라. 나중에 들어오는 남편한테 오늘도 수고했다며 넉넉한 인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문을 여니 현관에 불이 켜져 있다. 논에 간다던 남편은 퇴근해서 편안하게 야구를 보고 있다. 자신만의 동굴에서 휴식을 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제 다시 출근했는데.

아침에 널어놓고 나간 옷가지들은 빨랫줄에서 이슬을 맞는 중이다. 남편을 불러서 빨랫줄의 옷 좀 걷으라고 하려다가 그냥 내가 걷는다. 동시에, 서둘러 밥상을 차리려던 마음도 접는다. 마트에서 사 온 돼지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캔맥주를 꺼내서 한 모금 마신다.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엔진오일이 필요하다. 쌉쌀한 에너지원 덕분에 다시 일할 기운을 얻는다.

씻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러 마당으로 나간다. 고양이들이 우르르 내 주변으로 몰려든다. 밥그릇들이 비어 있다. 아침에 사료를 채워놓고 나가면 주변의 들고양이들이 배를 채우고 집고양이들은 나를 기다린다. 개들의 시선을 뒤통수로 느끼면서 고양이들 밥과 물을 챙긴다.

개들에게 다가가면 겅중겅중 뛰다가 엎드렸다가 배를 뒤집으며 감정을 최대한으로 보인다. 더워서 입맛이 없는지 밥그릇은 아침에 주고 간 그대로다. 물그릇만 채워주고 2~3초 정도 만져주는 것으로 내 미안함도 보여준다. 아이들 키우면서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던 것처럼 개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넓은 마당은 사람이 살지 않은 집구석처럼 어질러져 있다. 마당 한쪽의 커다란 감나무가 봄부터 늦가을까지 내게 일감을 준다. 떨어져 물러진 감을 밟았을 때의 불쾌함 때문에라도 마당을 쓸어야 한다. 수십 년째 박혀서 빠지지 않는 가시 같은 감정의 찌꺼기까지 모아서 같이 버리고 싶어진다. 남편과 싸우면서 일감을 나누든가 내가 다 해치우든가를 늘 선택해야 한다. 같이 산 날들의 반복이다.

시대가 바뀌면 노래 가사도 달라진다는데 성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문 안의 모든 잡일은 여성의 일감이라는 관습을 남성들은 꽤 성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남성 근력의 의존도가 높은 농촌일수록 철옹성처럼 더 단단하다. 제도 같은 규칙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한 사람의 개인적 의지나 선의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마트에서 사 온 돼지고기는 놔두고 라면을 끓인다. 나는 라면을 맛으로 먹지만 남편은 허기 채우기 위해 먹는다. 먼저 퇴근해서도 옷들이 빨랫줄에서 이슬 맞고 있으면 라면을 더 자주 먹게 될 것이라고 남편한테 알려준다.

비적대적 모순 그거, 물렁하게 봤다가 내 인생이 물러지고 있음을 다시금 실감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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