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eaT 체계만으로 ‘친환경 학교급식’ 확대? 어림도 없다

  • 입력 2021.09.05 18:00
  • 수정 2021.09.05 21:3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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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강원도 횡성군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점심 급식을 받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강원도 횡성군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점심 급식을 받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019년 11월 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eaT농수산물사이버거래소 설립 10주년 기념식. aT는 eaT 체계 도입을 통해 학교급식이 한 단계 발전했다고 자평했지만, 아직 ‘건강한 학교급식 체계 구축’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공
지난 2019년 11월 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eaT농수산물사이버거래소 설립 10주년 기념식. aT는 eaT 체계 도입을 통해 학교급식이 한 단계 발전했다고 자평했지만, 아직 ‘건강한 학교급식 체계 구축’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공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사장 김춘진, aT)가 운영하는 현행 학교급식전자조달시스템(eaT)으로는 참된 친환경 학교급식 체계 확립, 나아가 건강한 공공급식으로의 발전이 어렵다는 지적들이 제기된다.

어느덧 eaT를 도입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중간점검을 대대적으로 할 시점이 됐다. eaT 체계는 어떤 한계점을 갖고 있을까? 대안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유령’들이 도시를 떠돈다

최근 전국 곳곳의 대도시에서 발생한 급식비리 사례들은, 현행 eaT 체계가 취지와 달리 급식비리를 잡아내는 데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인천 사례를 보자. 인천 급식납품업체인 A업체(이하 업체들의 알파벳 이니셜은 업체 실명과 무관함)는 2016~2018년 인천 교동도의 친환경농민 7명으로부터 학교급식용 쌀을 공급받아 학교에 납품한 바 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까지, A업체는 해당 농민들에게 지급됐어야 할 쌀값 대금 2억498만1,000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A업체로부터 받아야 할 쌀값 대금(최소 928만원, 최대 1억5,674만7,500원)을 못 받은 업체들이 있다. 교동도 농민들과 해당업체들은 현재 ‘인천시 학교급식 채권단(채권단)’을 꾸린 상태이며, A업체 대표 J씨는 이 사안으로 인해 지난 6월 구속됐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채권단은 J씨의 ‘페이퍼컴퍼니(유령업체) 설립’ 및 ‘유령업체로의 자금도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채권단이 지난 3월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 따르면, J씨는 지난해 9월 이혼한 전처가 신규설립한 농업회사법인 B업체에 A업체 소유의 농산물 절단용 기계를 옮겼고, 배송차량도 이전시켰다. 또한 A업체가 거래하던 냉동식품업체와의 계약권도 J씨가 B업체로 넘겨줬다는 내용이 탄원서에 담겼다. 농가들에 대한 채무이행 목적으로 쓰였어야 할 돈이 유령회사로 옮겨졌다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다.

채권단이 탄원서와 함께 제공한 증거사진에는 A업체의 간부가 지난해 3월 B업체에서 업무 중인 모습이 담겼다.

A업체는 B업체 설립 이전에도 유령업체들을 설립해 식재료 전부를 해당 업체들이 아닌 A업체로 납품하도록 하면서, 사업수익은 A업체와 유령업체가 배분했다는 혐의도 제기된다. 채권단은 A업체의 유령업체 의혹을 받고 있는 C업체가 물품 거래대상에게 제출했던 사업자등록증도 증거물로 제출했는데, 이 문서에는 “납품은 A업체 창고에 넣어주세요. 비번(비밀번호) XXXX(A업체 창고 비밀번호)”이라고 쓰여 있어, C업체가 사실상 A업체의 유령회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C업체 대표자로 등록된 사람은 A업체의 간부 출신이라는 A업체 직원의 통화 녹취록도 증거물로 제출됐다.

유령업체 문제는 부산에서도 대두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12일과 19일 부산MBC가 방영한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 ‘감시자 없는 3,418억원’ 편에선 부산 내 모 급식업체가 복수의 유령업체들을 운영하며 eaT 체계를 통한 학교급식 납품 입찰에 참여해 온 정황을 보도한 바 있다. 방송에선 해당 급식업체가 복수의 유령업체들을 입찰에 참여시켜 낙찰 가능성을 높이고, 낙찰된 업체가 그 수입을 여타 유령업체들과 나누는 수법을 밝혔다. eaT 이용약관 상 1대의 차량은 1개 업체에서만 등록 가능한데, 해당 유령업체들은 이를 어기며 1대의 차량을 공동으로 이용해 왔다.

대대적인 공론화 과정이 있었음에도, 아직까지 부산에서 유령업체 관련 문제는 근절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의 한 급식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부산에선 하나의 건물 내에 칸막이들만 설치해 놓은 채, ‘모체’인 급식업체의 부하직원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4~5군데씩 들어가는 현상이 목격된다”고 밝혔다.

부산시의 한 먹거리 시민사회 관계자도 “학교 영양교사들이 복수의 급식업체에 전화해도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 즉 한 명의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는 제보도 많았다. 다른 업체로 등록돼 있어도 전화는 사실상 한 군데로 연결되는 셈”이라며 “1개 업체가 복수의 유령업체를 운영하면서 ‘학교 납품 계약은 내가 땄어도 공급은 너희가 해라’는 식으로, 모체인 업체와 유령업체들 간의 ‘이익 공유’ 상황이 조성된다. 이에 따라 양심적인 급식업체들로서는 학교급식 납품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불량급식업체 대상 제재조치도 미비

이러한 급식비리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aT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aT의 ‘학교급식 불공정행위 의심업체 제재조치’ 자료에 따르면, 2015~2019년 불공정행위 의심업체에 대한 사후현장점검 횟수는 1,423건, 그중 제재조치 횟수는 677건이었다. 사안별로 보면 △계약서류 공동보관, 공동 업무관리 420건 △타 공급사 또는 미등록 배송차량 납품 124건 △사업체 등록만 해놓은 채 영업장 미운영 45건 △현장점검 거부 등 기타 88건이었다.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aT 자체적으로 가할 수 있는 제재는 ‘3~12개월간의 입찰 참여 금지’가 사실상 전부이다. 이병호 전 aT 사장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aT 자체에 행정처분 권한이 없고, 행정처분을 위해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등과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eaT 참여 급식업체들을 관리하기 위한 aT 자체 인력이 충분치도 않다 보니, 지역 급식업체들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례로 부산의 경우, 관내에 260여군데의 급식 참여업체가 존재하는데, aT 직원들 몇 명만으로 이 모든 업체들을 다 전수조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부산 먹거리 시민사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나마 ‘3~12개월간의 입찰 참여 금지’ 조치가 잘 이뤄지는지도 의문이다. 위에 언급한 인천 A업체 대표 J씨가 지난 6월 구속됐음에도, A업체는 6~8월에 걸쳐 여전히 7건의 학교급식 공급에 참여한 것으로 eaT 상에 기록됐다.

이처럼 급식비리가 빈발하는 한, eaT 체계 하 학교급식의 ‘건강성’ 담보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만희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15~2019년 eaT 참여 식자재 공급업체들의 부정행위 총 2,278건 중 식품위생 위반 건수가 678건, 원산지 위반 건수가 126건이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특히 식품위생 위반 건수가 2015년 89건에서 2019년 173건으로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이 의원이 거론한 사례로, 2019년 4월 경북의 한 유치원에선 약 7개월 동안 브라질산 닭고기를 소속 유치원생에게 급식용으로 사용하면서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거짓 표기한 사례가 있다.

이와 별개로, 올해 대전시와 세종시, 충남 금산군 등지의 260개 학교엔 모 대형급식업체가 해동한 냉동육 16만9,585kg을 ‘냉장육’으로 속여 13억원 가량의 물량을 공급한 바 있다. 해당 업체는 6년간 가족 명의의 유령업체를 7개나 만들어 eaT에 8,967회 반복 투찰했다.

현행 eaT 체계는 기본적인 서류심사 및 현장실사를 통해 급식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보니, 정작 식재료 공급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 예컨대 저질 먹거리 공급이나 거짓 원산지 기록 등의 문제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재료 공급 과정까지 전수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eaT 체계는 비록 제한입찰 방식이 주류라곤 해도 어쨌든 ‘경쟁입찰’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이다. eaT 체계 하에서, 학교들은 학교 입장에서 ‘적절한 가격(사실상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급식업체들과 거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학교에서 먹거리를 직접 다루는 영양교사들 입장에선 예산상의 문제로 친환경·Non-GMO 식자재 구입에 힘을 쏟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aT가 eaT 운영과 관련해 ‘지역농산물 소비 확대 등을 목적으로 지자체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지역산) 식재료를 공급하는 경우 시스템 이용 수수료 30%를 할인한다’는 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현행 eaT 체계 자체에 친환경농산물, Non-GMO 먹거리 공급업체에 공급 우선권을 준다는 식의 규정은 담겨 있지 않다.

결국 지자체, 근본적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친환경 학교급식 차액지원사업 및 지역산 식재료 현물공급체계 구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eaT 체계만으론 aT가 내세우는 ‘건강하고 안전한 학교급식 식재료는 전자조달시스템이 정답’이란 구호가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큰 셈이다.

농민·시민 주체 급식체계로 나아가야

2019년 2월 25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학교급식 개선과 친환경로컬푸드 공공급식 확대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 친환경농업계 관계자가 토론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19년 2월 25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학교급식 개선과 친환경로컬푸드 공공급식 확대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 친환경농업계 관계자가 토론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그렇다면 향후 논의돼야 할 대안은 무엇일까? 우선, eaT 자체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eaT의 주된 허점으론 ‘급식업체의 식재료 공급 과정’에 대한 상시 점검이 쉽지 않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이빈파 전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대표(현 화성시 푸드통합지원센터 급식사업국장)는 “급식 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자주관리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이 전 대표는 서울시 성북구에 친환경 학교급식 체계가 확립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는데, 이 과정에서 80~150여명의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단이 성북구 학교급식 식재료의 안전성 및 국산 식재료 자급률 향상 여부를 점검했다.

이 전 대표는 “학부모들이 많은 도시 지역에선 성북구처럼 학부모가 모니터링단 운영주체가 될 수도 있고, 반면 학부모들이 적은 농촌 지역에선 농민이 급식 관련 자주관리체계에 참여하는 구조를 보장하는 등, 운영의 묘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며 “행정단위에만 모니터링 관련 역할을 맡길 시, 행정단위 특유의 견고한 칸막이 때문에 모니터링 과정에 한계가 생길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이러한 ‘자주관리체계 가동’ 사례로, 성북구 사례와 함께 경기도 김포시 학교급식지원센터의 모니터링단(김포 모니터링단) 운영 사례를 들 수 있다. 올해 5기째를 맞이하는 김포 모니터링단은 7개조로 구성돼 있으며, 1주일에 2개조씩 김포 학교급식에 참여하는 모든 업체들의 먹거리 공급과정, 먹거리의 질 등을 전수조사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모니터링단의 활동은 중단된 적 없으며, 한 달 1회 평가회의를 통해 모니터링 과정을 전반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김포 모니터링단 활동은 김포시에서도 중점사업으로 삼고 있다.

사실 aT 내에서도 ‘학부모 모니터링단’ 결성을 계획한 적이 있다. 김규태 전 aT 지속가능농식품전략추진단장은 2018~2019년 aT에서 학부모 모니터링단 결성을 위해 동분서주한 바 있다. 그러나 aT 지속가능농식품전략추진단은 한시적 조직이었기에, 김 전 단장이 2019년 8월부로 임기가 만료되면서 모니터링단 결성 추진 과정도 중단됐다. aT에서 김 전 단장의 뒤를 이어 모니터링단 추진 업무를 계속했으면 좋으련만, aT엔 김 전 단장의 ‘후계자’가 없었다.

김 전 단장은 “2019년 들어 4~5개월간 학부모 모니터링단 결성을 위해 회의도 수차례 열고, aT 직원들도 계속 설득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외부 전문가들까지 초빙해 모니터링 대상과 방향,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함께 세워놨었다. 그러고 보니 내 남은 임기는 2개월 뿐이었다. 모니터링단 결성 실현엔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 뒤 “이게 현실화됐다면 그래도 eaT 체계의 허점을 나름대로 보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편 eaT 자체만으로는 친환경 공공급식 확대 및 이에 수반되는 계약생산체계 구축이 어려운 만큼, 근본적인 공적조달체계 마련을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일례로 충청남도에선 충청남도친환경연합사업단(충남친환경연합사업단)의 주도로 충남 자체적인 광역단위 공공급식지원체계를 마련한 바 있다. 충남친환경연합사업단은 진정한 친환경 공공급식 체계 구축을 위해선 ‘산지조직화’와 ‘유통확대를 위한 생산관리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인식하에 △생산관리요원의 산지조직화 및 출하회 조직화 노력 △현장에서의 작부 작기 및 생산관리, 품위기준 관리 △생산관리요원의 안전성 관리 △농가 애로사항 지원 및 현장 상담 △생산관리전산시스템 개발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기존 eaT 체계와 달리, 충남의 체계에선 공공급식에 공급될 식재료의 안전성 관리를 산지에서부터 진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eaT 체계보다도 안전성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 또한 ‘친환경농가 조직화’라는 원칙을 우선시했기에, 충남친환경연합사업단은 eaT 체계에선 놓치기 쉬운 ‘먹거리의 친환경성 강화’도 담보할 수 있었다.

충남친환경연합사업단의 계약재배농가 조직화 과정에 참여한 농가 수는 2017년 712농가에서 2019년 821농가로 늘어났으며, 현재 충남도내 93개 품목의 계약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충남친환경연합사업단의 학교급식 매출액은 2017년 16억4,128만원에서 2019년 약 93억1,076만원으로 폭증했다. 비록 지난해 매출액이 37억7,153만원으로 줄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코로나19에 따른 학교급식 파행운영에 따른 것이다. 한편으로 지난해부터 시작된 충남도 내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약 5억원어치 물량 공급)도 충남친환경연합사업단의 산지조직화 노력 병행으로 가능했다.

충남친환경연합사업단의 이러한 성과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부터 진행한 ‘광역단위 친환경 산지유통조직 육성사업(광역산지조직 육성사업)’과 연동해 실현됐다. 그러나 정작 농식품부는 이 광역산지조직 육성사업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향후 충남처럼 지역 자체적인 공적조달체계 구축 강화가 이뤄지려면, 광역산지조직 육성사업은 중단되긴 커녕 오히려 더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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