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짜는 게 죄도 아닌데,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

[르포]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낙농 현장

  • 입력 2021.09.03 08:38
  • 수정 2021.09.03 08:4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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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31일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새벽목장’에서 농장주 박승대씨와 그 아들이 젖소들을 착유구역으로 몰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새벽목장’에서 농장주 박승대씨와 그 아들이 젖소들을 착유기 앞 분리구역으로 몰고 있다.

 

우윳값이 연일 언론의 공격을 받는 지금, 낙농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지난달 31일 낙농업으로 유명한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서 우유를 짜 서울우유협동조합에 납품하는 ‘새벽목장’을 찾았다. 1990년대 초 고향으로 돌아와 낙농을 시작한 농장주 박승대씨는 착유우 40여 마리를 비롯해 육우, 한우 등 약 180마리의 소를 기른다. 각종 수상기록이 빼곡할 정도로 우량한 젖소를 기르기로 유명했고, 지난 2010년 구제역 파동 때는 피해농가 비상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아 전면에서 싸우길 주저하지 않았을 정도로 낙농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박승대씨를 돕고 있는 아들이 TMR사료배합기를 가동해 사료를 급여하고 있다.
박승대씨를 돕고 있는 아들이 사료를 급여하기 위해 TMR사료배합기를 가동하고 있다.

요즘 젖소목장은 대표 기피 현장

비슷한 규모의 농가들처럼 박씨 또한 본인의 노동력을 포함해 두 사람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박씨가 고용했던 이주노동자들은 지난달 초에 모두 그만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농촌 이주노동자 유입이 끊기자 인건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는데, 이를 맞춰준다고 해도 오는 사람이 없다. 도시에서도 사람이 부족한 탓에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여건이 더 좋은 공장지대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변 낙농가뿐만 아니라 다른 농업 현장에서도 흔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는 하다.

“하루가 다르게 인건비가 올라요. 월급을 220만원으로 올렸는데 더 올려달라고 해서 250만원까지도 올렸는데도 둘 다 나갔어요. 같은 돈을 받아도 도시가 훨씬 편하니 이제 여긴 잘 안 오려고 하죠. 아들이랑 아내랑 셋이서 쉬는 날도 없이 그냥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불행 중 다행으로 박씨의 아들이 때마침 제대했다. 정부 정책으로 군 복무기간이 단축돼 예상보다 앞당겨진 전역일이 농장에 인력공백이 발생한 시점과 딱 맞아떨어졌다. 앳된 얼굴에 아직 짧은 머리를 숨기지 못하는 아들은 한창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매일 같이 성실히 부모님의 생업을 돕고 있다. 아들과 아내가 아니었다면 박씨의 휴식 시간은 거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모든 낙농가가 그렇듯 새벽목장은 그 이름처럼 새벽 4시가 되면 착유를 준비한다. 착유를 마친 소들이 바로 식사할 수 있도록 TMR사료 배합부터 시작한다. 무거운 포댓자루를 바퀴 하나 달린 수레에 실어 나르고 들어 올리는 것은 남자인 박씨와 그 아들의 몫이다. 짚과 갖가지 종류의 사료, 펠렛 등 7가지 재료를 이동배합기에 넣고 섞는 작업이 끝나면 박씨는 착유실로 향하고, 그 아들은 긴 막대를 들고 축사로 들어간다.

성체가 된 홀스타인종 암소의 체중은 일반적으로 650kg 안팎. 한우나 육우 수소들처럼 1톤에 육박하는 몸집은 아니지만, 충분히 거대한 덩치가 사람의 접근에 놀라 달리는 모습에 살짝 긴장감이 돈다. 온순한 성격을 지닌 젖소들은 막대를 휘두르며 축사를 휘젓고 다니는 사람의 움직임을 피해 한쪽으로 몰리더니, 마치 젖을 맡겨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듯 순순히 착유기 앞 분리구역으로 집결한다.

축사에 남은 아들이 이동배합기를 가동하며 사료를 배급하는 동안, 박씨는 아내와 함께 본격적인 착유에 들어간다. 착유실로 한 무리의 소를 유도하고, 젖을 소독하고, 착유기를 물리고, 다시 젖을 소독한 뒤 내보내길 끝없이 반복한다. 아직 사료를 먹지 못하는 송아지들에게 물릴 우유를 따로 짜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그렇게 40여 마리의 착유를 끝내면 이제 청소가 시작된다. 젖소는 착유를 하는 동안에도 변을 보기에 착유실 앞 분리구역과 착유실 바닥이 금방 흥건해진다. 송아지들에게 직접 젖을 먹이고, 다른 우사에 있는 한우와 육우들까지 먹이고 나면 그제야 서너 시간에 달하는 한 번의 일과가가 끝난다. 이 모든 일을 오후 3시가 되면 다시 한 번 반복해야 하니, 박씨가 아들의 이른 제대를 그토록 다행스럽게 여긴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아들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어 고심이 커지고 있다.

 

 

박승대씨 부부가 착유실에 들어선 소들의 젖을 소독하고 있다.

 

박승대씨가 착유기 앞에 선 젖소의 젖에 착유기를 물리고 있다.

 

 

생산비 연동제, 그마저 흔들다니

박씨의 우사는 총 세 곳이다. 착유시설을 갖춘 1,200평 규모의 목장 외에도 다른 한곳엔 아직 성장기의 젖소들이, 또 다른 한 곳에는 한우와 육우가 지내고 있다. 착유우들이 지내는 축사는 다른 두 곳에 비해 굉장히 깨끗하고 쾌적한 시설을 갖췄는데, 축산시설 적법화 시행 이후 정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새로 지은 것이라 했다.

“착유 목장은 기존 낡은 시설로는 적법화가 너무 어려워서 아예 다른 땅에서 새로 허가를 받았어요. 원체 땅이 못 생긴데다 근처 하천부지도 걸림돌이 되고 그래서. 빚이 많이 늘었죠. 파이프값이 워낙 올라서 축사는 평당 50~60만원을 써야 지을 수 있어요. 그나마 부모님이 물려주신 논을 메우고 지었으니 망정이지, 새로 땅을 사야 했다면 빚이 20억은 됐을 거에요.”

박씨가 낙농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일대에 40여 가구의 축산농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절반인 20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 다섯자릿수가 깨지고 어느새 5,000가구 이하로 줄어든 전국 낙농가 수의 변동 흐름과 똑같다. 앞서 박씨의 일과를 통해 묘사한 강한 노동강도 탓에 많은 낙농가들은 후계자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와중 ‘적법화’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면서 더 이상 투자할 여력도,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 농장을 접곤 했다고 박씨는 회상한다.

“생산비가 인상됐을 때 그 다음 해 바로 반영해서 가격 결정을 한다는 게 연동제 아니에요. 다행히 우리 농업에서 그나마 농산물 생산비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게 자랑스러웠죠. 내가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생산비를 비록 조수입 위주로 따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부분에 대해서 현 정부가 전 정권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 쉬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연동제 시행 첫해였던 2013년 원유 기본가격은 940원이었다. 지난 2016년 922원으로 떨어진 뒤 2018년에 4원 오른 926원이 바로 얼마 전까지의 원유가격이었다. 좋게 생각해도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새 엄청나게 오른 생산비 물가를 체감하는 것도 모자라 정부 정책을 따라가느라 수억원의 빚과 그 이자를 떠안은 농가들 입장에선, 그간 생산비가 늘어나지 않았으니 원유가격도 동결하겠다고 하는 말도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생산비 연동제의 개편은 낙농가에 대한 멸시에 가깝다고 박씨는 말했다.

“사실 제일 힘든 건 쉬는 날 없는 노동도 아니고, 날이 갈수록 오르는 생산 물가도 빚도 아니에요. 다름 아닌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우리 축산의 현실을 느끼는 그 심정이에요. 내가 못할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 정책 따라 낙농에 헌신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원흉이니 주범이니 몰려서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점이 가장 고통스럽네요.”

 

아직 사료를 급여할 수 없는 송아지들이 따로 착유해 둔 젖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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