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기술과 자본 아닌 사람 중심의 탄소중립시나리오로 전면 수정돼야

  • 입력 2021.08.29 18:00
  • 기자명 박종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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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
박종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

 

 

지난 5일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3가지 탄소중립시나리오(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했다. 5월 29일 탄중위를 구성한 지 두 달여 만에 일사천리로 초안이 발표된 것이다. 탄중위는 분과위와 전문위를 구성해 짧은 기간 압축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시나리오를 마련했다고 하나,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기술과 자본을 통해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성장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성장지상주의 대책으로 기후정의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농축수산 분야의 경우 사람과 환경 중심으로 기존 생산주의 농정을 과감히 대전환해야 한다는 관점은 사라지고, 진단부터 처방까지 변죽만 울린 대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농수축산 분야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2,470만톤 대비 31.2~37.7% 감축하는 것으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감축수단으로 농기계 연료를 전력화·수소화하고, 고효율 에너지 설비 보급, 바이오메스 에너지화를 추진하며, 화학비료 저감과 친환경농법 시행 등 영농법 개선, 가축분뇨 자원순환 확대 및 저탄소 가축관리시스템 구축, 식단변화, 대체 가공식품 이용 확대 등 식생활 개선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정책으로 정밀농업 등 저탄소 농수축산 기술개발 및 보급, 투자를 확대하고, 농수산식품 수요·공급 체계 전반의 저탄소화를 추진하며, 식량안보 강화 및 농어업분야 기후적응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전환은 실종되고,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인 농민은 안중에도 없는 대책이라 할 수 있다.

탄중위 시나리오에서 농업 홀대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 할 수 있다. 농업에서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8년 기준 3.4% 수준으로 대책 또한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부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세계자원연구소(WRI)는 2016년 기준 농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18.4~20.1%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했으며, 농축산물 수입에 따른 탄소 배출과 수송, 소비, 폐기까지 포함하면 최대 37%까지 차지할 것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밝히고 있다. 이렇다 보니 탄소중립에 있어서 농식품분야를 핵심과제로 설정하여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제시한 기준을 바탕으로 농업 생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측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생산에 투입되는 수입 원료 및 자재에서 발생된 온실가스와 소비, 유통, 폐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배출치를 측정하고, 이를 감축하려는 과감하고 종합적인 대책이어야 한다.

온실가스 흡수원으로서 토양의 중요성이 간과된 점도 보완돼야 한다. 시나리오에는 흡수원으로서 산림 관리 강화만을 제시하고 있으나, 건강한 토양은 대기 중의 탄소 등 온실가스 흡수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IPCC는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토양의 탄소저장량은 대기의 2~3배로 가장 효과적인 기후변화 완화 수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2015년 파리기후변화 회의에서 프랑스는 매년 0.4%씩 토양의 탄소저장능력을 향상시키는 국제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탄소세 수입 중 100억원 이상을 건강한 토양프로그램을 실천하는 농민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대책과 이를 실천하는 농민들에게 보상하는 정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도 반영돼야 한다. 시나리오에는 농어업 생산성 향상, 기후변화에 따른 농어업 기술지원체계 강화 등을 통해 식량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최대 주범인 수입농산물에 대한 대책 없이는 식량주권과 탄소배출 저감은 요원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국내 주요 농산물의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과 수입 사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축산 문제,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있는 농지에 대한 보전 대책 등이 시나리오에 포함돼야 한다.

끝으로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로서 농민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기술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기술만능주의는 결국 기업과 자본을 위한 것이지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이자 해결자인 농민의 역할을 확대하고 보상하며, 생태적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을 확대 시행해야 한다. 혁신성의 원칙보다 공정성과 책임성의 원칙이 우선돼야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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