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참깨 정선 후기

  • 입력 2021.08.29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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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추억이 뭐냐고 물으면 단연코 참깨 수확이라고 말하렵니다. 지난 3일부터 근 보름 넘게 온통 참깨 농사에 매달렸습니다.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렸던 시기였지요. 그때는 인격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아침저녁의 짧은 그 시간뿐인지라 그동안에 참깨를 베고 털고 말리고 키질을 하느라 영혼이 가출하는 듯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넘길라치면 땀이 비 오듯 해서 더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확실히 기후위기가 맞다고, 어떻게 이렇게 더울 수가 있냐고 투덜대면서도 꾸역꾸역 일했습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농사일을 할 때 그렇듯 말입니다. 안 하고 싶지만, 안 할 수 없는 일들을 기어이 해내고는 스스로 위대함에 감동받는 일 말이지요. 뭐, 그렇다고 농사량이 많지도 않습니다. 고작 200평이 조금 넘는 양인데도 쏘물게 심겼고, 올해 날씨에 병이 하나도 없다 보니 평소보다는 조금 많게 느껴진 것입니다.

심고 베고 하는 일이야 그전에도 늘 해오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그놈의 키질, 키질이 문제였습니다. 이전에는 어머니께서 하던 일이라 그냥 그런가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하려니까 영 어설프고 자세도 안 나올뿐더러 까분다고 까부는데 쭉정이가 안쪽으로 밀려드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지능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발달학을 익히 배운지라 몸으로 하는 일에 저항감이 덜 한편이어서 덥석 시작했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좀 힘든 것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자주 하다 보니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건 서서 하건 일단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라는 것이고, 자세가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몸을 뻣뻣하게 서서 하면 키 속의 곡물이 쏟아질 듯 위태로워서 앞쪽으로 수그린 자세를 취하거나, 아예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것이지요. 그러자니 자연 팔에 힘이 많이 가고 어깨에 무리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미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옳다구나! 농기계 임대사업소에 가서 참깨 정선기를 빌려오자,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농업기술센터에서 임대사업소를 세 곳이나 운영하는데 오만 농기계가 다 있으니 당연히 참깨 정선기도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농기계 임대소에 참깨 정선기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정답은 없음. 어라, 남해만 없나? 싶어 강원도 영월도 검색해보고, 농업의 고장 전북 완주 농업기술센터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검색해봐도 참깨 정선기는 없었습니다.

참깨 정선기는 200만원 넘는 정도의 가격입니다. 그러니 참깨 농사를 조금씩 지으면서 정선기를 구입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가격 문제가 아니면 기계가 조잡하여 정선이 잘 안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만, 어쨌거나 우리나라 대다수 여성농민들은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참깨 정선을 키질로 해낸다는 것입니다. 참말로 위대한 여성농민들이지요. 그 불편하고 힘든 일을, 기계로 할 생각은 않고, 몸으로 다 감당을 해내니, 살림 측면에서나 기후위기 대응에서나 최고의 역할을 하는데 몸이 망가지니 그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물론 세상은 당연하게 여기고 말입니다.

마침 오늘이 인근 지역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장에 갔다가 키 장수를 보았습니다. 우리집 키 날개가 망가져서 새 키를 사볼까 어쩔까 망설이던 차에 관심을 가지며 펼쳐놓은 키 앞으로 갔는데 장사분께서 권하지를 않았습니다. 아마 구경꾼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에라, 이왕 깨 수확은 끝났고 다음에 사자며 지나쳐 왔습니다. 수입된 값싼 키를 하나 사는 것도 이토록 망설이는데, 기백만원씩 하는 참깨 정선기를 어떤 여성농민이 감히 사겠습니까? 할만하면 손으로 하는 것이지요. 국산요? 할인가가 15만원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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