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축산물 가격정책엔 ‘지속가능’이 없다

  • 입력 2021.08.29 18:00
  • 기자명 이한보름(경북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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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보름(경북 포항)
이한보름(경북 포항)

삼성전자의 신제품인 ‘갤럭시 Z폴드 3’가 공개되었다. 역대급 디자인과 성능으로 무장한 이 스마트폰은 전작보다 우월한 스펙을 자랑하지만 200만원 초반대의 착한(?)가격이 책정되었다고 해서 출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런 공산품 가격은 제품개발 비용, 원자재 가격, 임금상승률, 물류비 상승 등의 복합적인 이유를 근거로 제조사에서 결정을 하며, 제조 원가는 영업비밀이라는 말로 철저하게 보호된다. 가격의 결정권은 생산자에게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농축산물의 가격은 도매시장에서 정해진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며, 가격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아지면 비축된 물량 공급이나 시장격리를 통해 적정 가격을 방어하는 시장조절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가격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공개되고, 일 단위로 모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농축산물의 영업비밀은 국가에 의해 철저히 까발려진다. 가격 결정권이 오롯이 소비자의 손에 쥐어지게 되는 것이다.

과다하게 노출된 농산물의 정보는 때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불신을 가지게도 만든다. 산지 가격에 바로 연동되지 않는 소비자 가격은 불신에서 불만으로 바뀌고, 그 순간 어김없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을 하는데, 이런 개입은 대개 건전한 소비시장 형성을 흔들어 놓는다.

지난겨울 전국적으로 발생한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대규모 살처분이 이루어지면서 산란계 숫자가 크게 감소하였다. 반면에 계란 소비는 증가하면서 가격이 상승하자, 정부는 당장의 계란 가격을 안정시키고자 해외에서 생산된 계란에 관세혜택을 부여해서 국내에 공급하였다. 하지만 시장 안정화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산란계 숫자가 회복되는 하반기의 가격 하락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돼지고기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 도매가격이 상승하고 있으나 해외에서 수입해 오기엔 물류 확보가 어렵고, 국제 돼지고기 가격 역시 상승하고 있어 직접 수입이 여의치 않다. 이에 정부에서는 국내 사육되고 있는 돼지의 조기 출하를 유도해서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황당한 정책을 내놓았다. 돼지의 조기 출하는 규격돈 생산 정책과 정반대 방향일뿐만 아니라, 비규격돈을 출하함으로써 농가는 수취가격이 하락하고, 소비자는 선택권이 제한받게 되어 모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또한 가을 출하물량이 줄어들어 추석 이후 돈가까지 상승하는 문제를 유발하여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최근 반도체 수요 증가로 품귀현상을 빚고, 비트코인 열풍으로 고성능 그래픽 카드의 가격이 수직상승해도 이를 안정화하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하는 정책을 추진하진 않았다. 오히려 국내 생산기반 강화를 위해 정부 예산을 지원해 주고 관계법령들을 정비하여 산업의 자생력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해당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 농축산업도 이와 같은 장기적 관점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농축산물의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국내 생산기반 확보가 필수적이란 것을 관계당국에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세기가 낳은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제시해야 할 것은 ‘논리적으로 옳은 답’이 아니라 ‘현실에 통용되는 답’이다”라고 하였다. 관계 당국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 처방으로 농축산업을 망치지 말고 지속가능한 농축산업을 위한 근본적인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고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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