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일기예보⑥ 1974년 겨울, 폭설 그리고 김포공항

  • 입력 2021.08.2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중앙관상대에서는 각 지역의 측후소에서 올라온 관측 자료에다 이웃나라의 정보까지를 종합하여 일기도(日氣圖, weather map)를 완성한다. 그 다음으로는 그 일기도를 분석하여 기상상황을 예측하는 ‘일기예보’를 작성하는데, 이렇게 작성된 일기예보는 언론사를 비롯한 각 기관으로 보내져서 국민에게 전해진다.

그런데 방송국이나 신문사 등 언론기관의 일기예보 담당자들은 관상대(기상청)에서 보낸 예보를 간단히 줄여서 보도할 수는 있어도, 기상자료를 보고 제 나름의 해석을 따로 내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일기예보의 모든 책임은, 일기도에 표시된 기상정보들을 가공해서 예보를 만들어 낸 기상청 예보관에게 있기 때문이다.

당일 일기예보를 내보낸 해당 예보관은 과연 자신이 예측한대로 기상상황이 전개될 것인지 빗나가고 말 것인지를 확인하느라 속이 탄다. 퇴근을 했다고 집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고 김흥수 씨는 회고한다.

“가령 그날 아침부터 비가 내릴 거라고 예보를 했는데, 자다 일어나서 새벽에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엔 별만 총총 빛나고 있다…그럴 땐 애가 타지요. 차마 아내에겐 말도 못 하고….”

예보관마다 개인별로 예보의 적중률을 기록해서 평가를 하도록 돼 있고, 그 평가가 곧 예보관으로서의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날씨가 맑겠다고 했는데 흐렸다거나, 기온이 예상했던 수치와 큰 차이를 보였다든가 하는 정도라면 문제가 덜하지만, 호우나 태풍 등의 중대 기상상황을 잘못 예보하는 경우 그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비오면 소금장수 아들 걱정, 바람 불면 밀가루 장수 아들 걱정’이라는 속담처럼 모두에게 다 좋은 날씨나 모두에게 다 나쁜 날씨는 없다.

김흥수 씨는 울산측후소에서 1년간 근무를 하다가 김포공항에 있는 공항측후소로 발령을 받았다. 공항측후소의 기상요원들은 활주로의 시정거리(視程距離)를 관측하여 그 날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할 것인지 허용할 것인지를 사실상 결정하기 때문에 그 책임감이 막중했다.

“요즘엔 활주로에 광선을 쏘아서 시정거리를 측정하지만 당시만 해도 육안으로 하는 관측, 즉 목측(目測)에 의존했었거든요. 그땐 항공사 관계자들과 싸우는 게 일이었어요.”

-아니, 지금 이 날씨에 비행기를 못 뜨게 하면 우리는 어떡하란 말입니까?

-비행기를 뜨고 못 뜨게 할 권한이 우리한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 와서 그러십니까?

-이거 봐요. 측후소에서 시정거리가 불량하다고 관제소에 보고를 하는 바람에 이륙 금지 조치가 내려졌잖아요. 시정관측을 다시 좀 해보세요. 저 쪽 활주로 훤하게 잘 보이잖아요.

-공항에서는 시정이 나쁜 쪽을 기준으로 일기도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으로 돼 있고, 우린 그 원칙을 지켰을 뿐입니다.

이런 다툼이 자주 벌어졌다. 만일 이착륙 사고가 날 경우, 사고 당시의 기상상황과 관측기록을 철저히 점검하여 원인을 따지기 때문에 항공사측의 사정을 봐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흥수 씨가 김포공항 측후소에 근무하던 중에 가장 가슴을 졸였던 때는, 1974년 11월 말에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었다고 한다.

“공항측후소에서는 그 날 큰 눈이 내리겠다고 예보를 했어요. 하늘은 잔뜩 흐렸고 곧 눈이 쏟아질 것 같은데 의전행사가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겁니다. 군악대 팡파르에다 꽃다발 증정에다…만일 그렇게 요란하게 환송행사를 해놓고 나서 비행기가 못 뜬다면 이건 국제적인 사건이잖아요. 정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두 대의 전용기 중에서 한 대가 이륙하고, 뒤따라 나머지 한 대가 막 이륙하고나자 그 순간에 거짓말같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더라니까요.”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