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일기예보⑤ 일기예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입력 2021.08.1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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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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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방에 산재한 측후소에 전화가 가설돼 있지 않았던 시절, 측후소 직원은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그 지역에서 측정한 여러 가지 기상 관측 자료들을 중앙관상대로 전송했는데, 모든 보고는 암호 숫자로 이뤄졌다.

1960년대 초에 서울 변두리의 한 측후소 직원이 중앙관상대에 전화로 보고한 기상전문의 사례를 가상해보면 이런 방식이다.

-47108, 28009, 10291, 20274, 10098, 40226….

숫자 암호는 다섯 개씩을 한 무더기로 모아서 불러주는데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로 말한다. 47108은 four seven one zero eight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나열한 그 난수표 같은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흥수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47108에서 47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포함된 동아시아 지역의 코드이고요, 108은 서울지역을 나타내는 숫자지요. 28009는 28일 09시를 나타내고, 10291은 현재기온이 29.1도라는….”

그 암호 숫자들은 세계 기상기구인 WMO에서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타전돼온 경우일지라도 그 숫자만 듣고도 어느 나라에서 온 전문인지, 그 곳의 날씨가 어떻고, 온도와 습도가 몇 도이며, 바람은 어느 방향에서 어떤 속도로 불고 있고, 기압은 어떠한지 등등의 관측상황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전문을 작성할 때 표시하는 시각은, 반드시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각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각 지역의 측후소에 자석식 전화가 가설되고부터는 우체국으로 달려갈 일은 없어졌다. 그런데 그 시기 지방 측후소에 근무하던 기상요원들이 심심치 않게 경험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어느 날 측후소의 기상요원이 자취하는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서 대공과에서 나왔습니다.

-대공과에서 무슨 일로….

-수상한 사람이 이 집에 산다고 113으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신분증 좀 봅시다.

-예, 여깄습니다. 보름 전에 여기 측후소에 발령받고 왔는데 뭐가 잘 못 됐습니까?

-그렇습니까? 이거 죄송합니다. 낮에는 집에 있고 밤에만 주로 나가고, 가끔 집으로 무슨 무전기 같은 걸 가지고 들어가는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전 국민이 ‘의문 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구호로 계몽돼 있던 시절이었으니, 야간근무를 밥 먹듯 하고 무전기까지 들고 다니던 측후소 직원이야말로 간첩으로 오인받기 십상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리 복잡한 관측 데이터라도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송출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방 측후소 기상요원이 전화기나 무전기에 대고 four seven one zero…어쩌고 하는 숫자들을 목청을 돋워가며 불러대던 일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한편 전국의 관측소에서 기상 데이터가 모두 올라오면 중앙관상대 예보관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전문을 통해 올라온 수치들을 관측지점마다 표시를 해서 일기도를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 소련 등 우리나라의 기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의 기상자료들도 분석을 해서 종합적인 일기도를 만들어야 했다.

“지도를 펴놓고 사람이 일일이 관측지점에다 기상상황을 기입한 다음에 일기도를 작성하지요. 작성한 일기도가 나오면 예보관은 그 일기도를 분석해서 예보를 내는 것이고요. 지금이야 슈퍼컴퓨터가 있어서 각종 자료를 입력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계산해서 일기도까지 척척 출력할 수 있으니…세상 좋아졌지요.”

예보관이 예측한 기상상황, 즉 일기예보가 작성되면 언론사를 비롯한 각 기관에 보내진다.

일기예보는 그렇게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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