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 산지폐기 그 후 … 농민은 여전히 힘겹다

  • 입력 2021.08.15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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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현선씨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9일 넝쿨이 무성한 하우스에서 애호박에 비닐을 씌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현선씨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9일 넝쿨이 무성한 하우스에서 애호박에 비닐을 씌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현선씨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9일 넝쿨이 무성한 하우스에서 애호박에 비닐을 씌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현선씨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9일 넝쿨이 무성한 하우스에서 애호박을 수확하고 있다.
한씨가 애호박이 담긴 수레를 밀며 터널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한씨가 애호박이 담긴 수레를 밀며 터널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새벽부터 수확한 애호박이 8박스, 한씨가 트럭에 상자를 싣고 있다.
새벽부터 수확한 애호박이 8박스, 한씨가 트럭에 상자를 싣고 있다.
한씨가 농협의 입금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애호박 한 상자당 5,000원이었다.
한씨가 농협의 입금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애호박 한 상자당 5,000원이었다.
한씨가 화촌농협 농산물유통센터에서 경매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한씨가 화촌농협 농산물유통센터에서 경매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화촌농협 농산물유통센터에서 애호박 공동선별이 이뤄지고 있다.
화촌농협 농산물유통센터에서 애호박 공동선별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비 오듯 흘린 땀을 식히려 들어 온 하우스에서 그가 휴대폰 액정화면을 보여줬다. 농협의 입금 알림 문자였다. ‘호박(1,681kg) 출하대금, 1,036,440원 입금’ 그가 부연을 해줬다. “애호박 8키로(kg), 200상자에 100만원 받은 거죠.”

애호박 한 상자(20개들이)당 5,000원, 그게 그가 바깥에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로 폭염이 극성을 부리던 7월 마지막 주에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 받은 애호박 성적표였다. 하우스에 둔 선풍기가 더운 공기를 끌어모았을까, 땀은 식지 않고 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여전했던 지난 9일 강원도 홍천에서 하우스 20동, 2,000평 규모로 애호박 농사를 짓는 한현선(48, 화촌면 장평리)씨는 농협의 입금 문자를 보여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답답한 듯 이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 상자당) 최소 1만5,000원은 돼야죠. 기본 농자재값은 이미 다 들어갔는데 가격이 이러면 답이 없어요. 애호박은 7~8월 두 달 보고 농사짓는 건데…. 인건비는 고사하고 생산비도 감당이 안 돼요. 일꾼 두고 농사 크게 짓는 분들은 난리에요. 정말 곡소리 나죠. 아예 농사 접는 사람도 나오고….”

한탄하는 사이에 담뱃불이 꺼졌다. 불과 몇 분이나 쉬었을까.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애호박 넝쿨이 무성한 하우스로 다시 향했다. 이삼일 전 ‘인큐애호박’이 새겨진 비닐을 씌운 애호박이 넝쿨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비닐에 딱 맞게 커 크기도 일정했다.

한씨는 특품에 해당하는 애호박만을 골라 넝쿨에서 잘라내 컨테이너에 담았다. 상품에 해당하거나 크기가 살짝 큰 애호박은 아예 출하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폐기했다. 수확 과정에서 농가 스스로 버리는 물량만 전체의 20%에 달했다. 하우스 바닥 곳곳에 그렇게 내버린 애호박이 부지기수였다.

“값이 없으니까 농가 스스로 나가는 물량을 조절해요. 안 그러면 답이 없죠. 특품 가격이 5,000원이면 상은 내봐야 속만 상해요. 그렇게 해도 지난달 중순엔 3,000원(8kg 한 상자) 받았어요. 헛웃음만 나왔죠. 일이 좀 버겁더라도 혼자서 하니깐 버티는 거지. 사람 쓰면서는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지난달 말 강원도의 농민들이 애지중지 키운 애호박을 밭에서 트랙터로 짓이겼다. 올해 장마가 짧게 끝나며 기상여건이 좋아 생산량이 증가한 반면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며 학교급식, 식당 등에서 소비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소비가 안 되니 가격도 급락을 피하지 못했다. 애호박 8kg 한 상자당 3,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받아든 농민들은 출하 물량을 갈아엎어서라도 가격 하락을 막고자 했다. 산지폐기 소식에 전국에서 일시적으로 애호박 소비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새벽에 일 나선 지 네다섯 시간 만에 하우스 20동을 오가며 컨테이너 8개, 약 160kg에 달하는 애호박을 수확한 한씨는 공동선별장이 있는 화촌농협 농산물유통센터로 트럭을 몰았다. 파레트에 애호박을 내려놓고 잠시 사무실에 들러 경매 시세를 확인했다. 한 지역 도매시장에서 애호박 특품이 1만원에 거래됐다.

그는 “몇 주간 바닥을 쳤기 때문에 값이 더 올라와야 한다”며 “3년 전에도 가격이 대폭락해 농가마다 애호박을 갈아엎었다. 매년 여름마다 들쭉날쭉한 가격에 밤잠 못 이룰 때가 많은데 최소한 농산물의 최저가격은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거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날 출하해 비어있는 컨테이너를 트럭에 실은 그는 유통센터에서 나와 다시 밭으로 향했다. “한창 크기 시작한 애호박에 비닐을 씌워야 한다”며 발길을 돌린 한씨의 발걸음은 그 언제쯤 가벼워질 수 있을까. 정녕 그의 말마따나, 건설 일용직 일당조차도 안 나오는 농산물값에, 이 나라에서 농사를 계속 지어도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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