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친환경 인증, ‘순환’이냐 ‘순혈’이냐

  • 입력 2021.08.06 15:49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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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지난주에 3년 전부터 고민해왔던 인증 변경 신청을 했다. 유기 인증을 무농약 인증으로 바꾼다. 내 농사는 하우스농사, 노지농사 두 가지인데 하우스농사는 유기 인증을 유지하고 노지 인증은 바꾸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지역에 주말농장이 여기저기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과 가까워서이고 땅값이 비싸서다. 전업농을 하는 농사꾼이 평당 오십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그린벨트 땅을 사서 농사지을 수는 없으니 은퇴자들의 주말농장으로 바뀌는 중이다. 내 밭 주변에 그런 주말농장들이 차근차근 들어서면서 비산 농약이 불안해지기 시작한 거다. 거기다 과수나무까지 심기 시작하니 불안증은 더 심해졌다.

만에 하나라도 비산 농약으로 내 작물에서 농약이 검출될 경우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우선은 여기저기 알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봤었다.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럴 경우 농가에서 직접 결백하다는 이러저러한 증거를 제시해야 된다는 이야기들이다. 청문회를 열고 검출된 농약이 옆집서 뿌린 것과 같은 거라는 옆집 사람의 확인서도 받아 내고 필요하면 농약 분석 비용도 부담해야 되고.

그래서 생각해낸 고육지책이 인증을 둘로 나누는 것이었다. 노지에 사고가 나서 인증이 취소되더라도 하우스만이라도 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슬쩍 욕심을 더 내보게 된다. 자가 퇴비에 대한 욕심이다.

몇 년 전부터 거름에 보태려고 닭 열 마리 정도를 키우고 있다. 물론 배합사료도 일부 먹이지만 각종 채소와 쌀농사 부산물, 집에서 나오는 잔반으로 키우고 있다. 그런데 그 계분은 유기 인증에 사용하면 안된다. 100% 유기사료를 먹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기 인증 사료를 구해다 먹이더라도 사료를 어디서 언제 누구에게서 사왔는지 증빙 자료와 기록이 있어야 되고 거기에 하루 몇 kg 계분이 발생했는지도 기록을 해야 한단다.

내 농장에서 나온 축분을 내 밭에 쓸 수가 없다니.

이런 유기 인증의 ‘순혈주의’가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이야기다. 원재료 A, B, C를 투입해서 제품 D와 폐기물 F가 나온 것과 A+B+C=D+F임을 자료와 기록으로 제시하라. 그리고 원재료는 티끌 한 점 묻은 거라도 쓰면 안된다. 깨끗한 A4 용지 수준 아니면 인증 취소다. 너희의 순결함을 자료와 기록으로 제시하라.

무슨 공업 생산 분위기로 치닫는다. 제도 초창기에는 이정도는 아니었으나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

유기농업이란 지속가능에 대한 마음씀일 것이고 그건 다음 세대에 대한 기본 예의일 것이다.

지속가능하게 농사를 하려고 궁리를 하게 되면 한정된 양분의 순환을 기반으로 토양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면서 영농을 이어나가는 이러저러한 노력들을 하는 것일 텐데 순혈주의로 치닫는 제도는 그나마도 여러 군데 끊겨있는 순환의 고리들을 더 철저하게 끊어내는 데 열심이다. 순환의 고리는 애초에 개방 내지는 열려 있음이 전제가 아닌가. 너도 나도 저 순환에 동참을 해야 그 고리가 튼튼하게 될텐데 제도는 점점 폐쇄로 가는 중이라는 게 현장 농사꾼들이 체감하는 현실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질소(일반 축분)는 못쓰게 하고 외국에서 수입한 질소(유박)만 허용하는 게 많이 요상하지 않는가?

재작년에 유기농업에 대한 법적 정의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말이다. 법은 바뀌었다고 하나 현장에서 느낌은 ‘순환농업을 하려면 유기 인증을 포기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다’이다.

제도는 칼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아군을 해하냐 적을 물리치냐가 결정된다. 농사꾼들이 국민들의 적일까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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