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일기예보③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 입력 2021.07.2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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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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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마마, 며칠째 계속되는 큰비로 한강물이 넘쳐서 수많은 인가가 떠내려가고, 목숨을 잃은 백성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옵니다.

-허허, 황새가 도성 문에 보금자리를 만들면 마땅히 수재(水災)가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과연 그 말이 틀림이 없구나.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백제 기루왕 40년(서기 116년)에 큰비가 내려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는데, 황새가 도성 문에 둥지를 튼 것을 홍수가 날 전조(前兆)로 이해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과연 황새는 홍수가 날 것을 미리 감지하고서 도성의 출입문 처마에다가 집을 지었을까?

중앙관상대 시절 명예보관으로 이름을 날리다 1998년에 퇴직한 김흥수 씨(1941년생)에 따르면, 예부터 민간에 전해오는 날씨에 관한 이런저런 속설들 중에는 나름대로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사례들이 많다고 얘기한다. 나는 이때다, 하고 어린 시절에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주로 비가 올 징조에 대한 속설들의 근거를 따져 물었다.

-청개구리가 냇가를 떠나서 나무 위로 올라가면 비가 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기압권이 다가오면 공기가 습해집니다. 청개구리들이 그것을 미리 감지한 것이죠. 그래서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기 전에 나무로 올라가 대피를 한 것입니다.”

-시골길을 걷다보면 개미가 줄을 지어서 한꺼번에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가끔 보이거든요, 그걸 보고 어른들은 비가 올 징조라고 하던데…같은 경우인가요?

“그렇습니다. 습도가 높아져서 비가 올 기미가 보이니까 개미굴속에 들어있던 놈들이, 물이 들지 않을 새 거처를 찾아서 집단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평소에 높이 날아다니던 제비가 유난히 낮게 날면 비가 올 거라는 속설은… .

“제비가 낮게 난다는 것은 먹잇감이 되는 곤충들이 낮은 데에 있기 때문이죠. 곤충들은 저기압이 다가와서 습도가 높아지면 날개가 무거워서 공중 높이 날지 못 하니까 낮게 날게 되고, 그것들을 잡아먹으려면 제비도 덩달아서 지면 가까이로 내려와야 하니까요. 굴뚝 연기가 낮게 깔리거나 집안으로 들어오면 비가 온다는 말도 역시 습도와 관계가 있는 것이고….”

이렇듯 현대적인 기상예보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주변 환경의 변화나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날씨를 예감했다. 앞에서 소개한 구전 속설들 말고도, 우리 속담들 중엔 날씨에 관한 것들이 적지 않다. ‘서쪽에 무지개가 뜨면 강 건너에 소를 매어서는 안 된다’(비가 올 것이므로), ‘저녁놀이 지면 다음 날 외아들을 고기잡이배에 태운다’(날씨가 좋을 것이므로)…등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기러기가 일찍 오면 그 해 겨울은 춥다’ 등과 같이 장기적인 기상 상황을 동물의 생태변화를 관찰하여 예감하기도 했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이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하니, 오랜 농경생활을 통해 축적한 지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상변화에 관한 기초적인 과학 지식을 갖추지 못했던 시절엔 천둥‧번개나 벼락, 혹은 갑자기 쏟아지는 우박 등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돌발현상이었다. 김흥수 씨는 말한다.

“현대 기상학으로 볼 때, 대기가 불안정할 때 천둥‧번개 현상이 나타나거든요. 그리고 우박은 상층에 한기가 형성되어 있을 때 하층의 공기가 가열되어서 그 기온 차이 때문에 쏟아지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5월과 6월, 그리고 11월과 12월에 산간지역에서 주로 나타나지요.”

하지만 이런 원리를 알 리 없던 옛 시절엔 갑자기 내리쳐서 멀쩡한 인명을 앗아가는 벼락이나, 혹은 일 년 농사를 삽시간에 망쳐버리는 우박은 달리 이해할 길이 없었으므로, 인간 세상을 향한 하늘의 준엄한 경고나 응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그래서 욕 중에서도 가장 심한 욕은 “벼락 맞을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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