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26] 꿈

  • 입력 2021.07.25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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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날이 덥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한다. 뙤약볕에서 한두 시간 일하기도 쉽지 않은 계절이다. 요즘 나의 작은 과수원과 텃밭의 주요 작업은 바로 예초다. 클로버로 뒤덮고 있어서 예초작업은 훨씬 수월한 것 같다. 연간 3~5회 정도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제법 잘 자라고 있는 어린 사과나무는 측지를 수평으로 잡아주기 위한 이쑤시개 작업도 가끔 해주고 있다. 낙옆 떨어지는 병을 예방하기 위해 석회보르도액을 살포해 주기도 한다.

그밖에도 고추 끈 매주기, 웃거름주기, 천연 약 주기, 토마토·가지·오이·포도 등 순 제거하기, 무·개성배추·육각보리 등 토종종자 채집하기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호박·참외·고구마·옥수수 등은 알아서 잘 자라고 있다. 텃밭에는 김장배추·무·쪽파·갓 등을 심고 파종하기 위해 밭을 고르고 퇴비를 뿌려 놓는 작업을 할 생각이다.

엄청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으나 농장은 늘 정돈돼 있는 것 같지 않고 풀도 무성하고 산만하다. 친환경 농장이라 그렇다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사실은 실력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일하는 시간보다 쉬고 노는 시간이 더 많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도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과 카페도 가끔 간다. 요즘은 서핑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 바닷가에 가면 유심히 관찰해보곤 한다. 나이 많은 이들도 있나 해서다. 대부분 젊은이인 것 같아 실망을 좀 하고 있으나 기회가 되면 더 나이 먹기 전에 도전해 보고 싶다. 여름이면 산과 바다를 찾아오는 어린 손주들과 힘들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일상이 되고 있다.

이와같이 나는 전형적인 노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더 이룰 것도, 더 바랄 것도 없는 나이가 돼 가고 있다. 평생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평하기에 더이상 경쟁하고 싶지 않으며, 더군다나 더 높아지거나 나아지고 싶은 생각도, 꿈도 없다.

백세 시대에 죽는 날까지 뭔가 꿈을 꾸고 도전할 목표를 설정해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고들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지금의 나의 생활에 백퍼센트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 직후 가난한 양양의 한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천신만고 끝에 미국 유학을 거쳐 대학교수의 일을 30여년 간 하고, 은퇴했으며, 은퇴한 지도 벌써 4~5년이 지나 내일모레면 칠순의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자로서 혼자만의 꿈이 있다면 평생의 연구대상인 농업·농촌·농민이 공정한 대우를 받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꿈마저 내려놓을 수는 없다.

그 꿈을 조금이라도 실현할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우리 사회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봉사할 생각이 있다. 그 봉사를 통하여 내 개인의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현재 양양군 신활력플러스 사업추진단장의 역할을 맡고있는 것도 봉사의 차원이다. 내가 맡으려고 나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요청이 왔길래 지역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맡았을 뿐이다.

크던, 작던, 어떤 곳이던, 어떤 일이던 나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냥 돕고 봉사할 생각이다. 그것이 나의 인생 마지막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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