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민들이 아프다

  • 입력 2021.07.25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1994년 11월 처음 농촌으로 왔을 때,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녀 어른들의 지병이 조금 달랐습니다. 남성들은 주로 술이나 담배로 인한 간이나 폐 등의 질환이 많았고, 여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릎 등 근골격 질환 등의 고통을 많이 호소하셨습니다. 더 나이 든 분 중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분들이 간혹 있어서 집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온 가족이 고생한다는 얘기들을 종종 듣고 보았습니다. 정확히 27년 후의 지금 농촌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뇌졸중 걸린 어른들은 집에서 모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술 담배를 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확실히 줄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근골격 질환이 무지하게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90년대 초중반으로 치자면 우루과이 협상이 체결되고서 농업이 재구조조정되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농사량을 배로 늘리거나 상업재배로 전환하지 않고는 생활이 불가능한 시대가 시작됐던 것이지요. 그때만 해도 변화되는 농업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다만 농민운동 진영에서는 한국농업이 다 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며 농산물 시장개방을 강력하게 반대해 나섰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현재 한국농업은 다 망해가는가? 나는 그렇다에 한 표를 던집니다. 무엇보다 후계인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요. 젊은 층이 농사를 지을 수 없거나, 지으려 하지 않는 까닭에요. 여기에서는 왜 그런지, 또는 향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초점이 아닙니다. 어쨌건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한국농업을 유지해가고 있는데,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60세가 정년인 다른 직종에 비해 농업은 60대에도 비교적 농사로 소득을 그대로 유지하므로, 적어도 그 연배에서는 농업을 괜찮은 직종쯤으로 여깁니다. 나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60살도 안 된 남편이 어깨 수술을 한 작년에 주변에서 어깨 관련 질환이 많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우리 부부에게 어깨질환 관련 문의를 한 사례를 꼽아보니 수도 없이 많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다수 농민들이 여러 가지 심각한 근골격 질환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시장개방으로 규모화, 단작화, 노령화된 농업환경이 농민의 몸을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직관이 생겨난 것입니다.

정년이 60세(또는 65로 늘리더라도) 전후인 것은 몸과 마음이 젊은 시절처럼 일하기가 어렵기에 사회적 규정을 만든 것이 아닙니까? 물론이거니와 농업 장면에서도 60대는 근력이 최고치인 연배가 아니라 한창 퇴화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벼농사를 몇만 평, 가축을 몇백 마리, 시설원예를 수천 평, 노지 채소를 만평 넘게, 과수 농사를 7~8,000평이나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합니다. 수확기나 파종기에 인력을 쓰더라도, 그 많은 시간과 공간을 노동으로 채웁니다.

물론 농사기술도 최고조에 이르러 자신감도 넘치고, 농사기반도 최고인 시절, 자식들에게 쓸 돈의 규모도 최고치인데, 조금만 더 일하면 돈이 눈에 보이는데 뒷방으로 물러나 물꼬만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죽기살기로 60대가 한국의 농업을 떠받쳐 내어 농업생산이 유지되고 있으니, 한국농업이 어느 상태인지를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한국의 농업만큼이나 개별 농민들도 중병을 앓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남녀 유병률의 차이에 대해서는 생략합니다. 부디 이 생각이 지극히 주관에 머물기를 바라면서요.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