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일기예보② 기상청 예보관의 애환

  • 입력 2021.07.18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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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내가 일기예보에 얽힌 요모조모를 취재하기 위해 기상청을 찾아가서 전·현직 예보관들을 만났던 때는 2002년 7월이었다. 옛날 얘기를 들으러 왔다고 말문을 열자 당시 기상청 홍보 담당관이던 김승배 씨는, 기상청에 와서 옛날 얘기 해달라고 청한 사람은 처음 본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밑도 끝도 없이, 예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의료기술의 발전과정과 비유하면 이해가 쉬울 거라고 했다.

“옛날엔 환자를 진단할 때 우선 안색을 살피고, 진맥을 하고, 청진기로 심장 뛰는 것을 어림해서 처방을 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거기 더하여 필요하면 엑스레이도 찍고, 혈액검사도 하고, 무슨 CT에다 MRI 검사도 하고…그런 다음에 의사가 처방을 내리잖아요. 일기예보 체계도 천양지차로 변했어요. 옛 시절에는 기초자료가 되는 관측망 자체가 워낙 부실했고, 관측기기나 설비도 원시적 수준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만한 일기예보를 내보낼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기상관측 설비도 촘촘하게 잘 갖추었고, 더구나 관측소에서 채집한 자료들을 슈퍼컴퓨터에다 입력을 해서 분석하기 때문에….”

따라서 언론매체를 통해 발표되는 ‘요즘’의 날씨정보는 주먹구구식에 가까웠던 예전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김승배 씨가, 예전에 비해 날씨 정보를 산출해낼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자랑하는 그 ‘요즘’은,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 ‘요즘’이 아니다. 내가 김승배 씨를 인터뷰 했던 때가 2002년 7월이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후의 기상청이 얼마나 더 과학화 되었을지는…독자가 알아서 요량할 영역이다.

하지만 2002년 당시라 해서, 매체를 통해 발표된 일기예보에 사람들의 불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찾아가기 보름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예보관실의 전화벨이 울린다.

-예, 기상청 예보관실입니다.

-나, 신길동에 사는 홍만석이라는 사람인데, (딸꾹)…거기가 일기예보 해주는 중앙관상대…아니 그, 뭐이냐, 기상청이 맞다 이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만….

-이런 나쁜 놈의 자식들….

-아이고, 술을 한 잔 잡수셨네요.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너희 놈들 때문에 내가 오늘 울화통이 치밀어서 낮술을 한 잔 마셨다, 왜?

-무슨 용무로 전화를 하셨는지 차근차근 말씀을….

-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가다 판 일꾼인데, 너희 놈들이 서울지방에 비가 온다고 엉터리 일기예보를 하는 바람에, 오늘 하루를 공쳐버렸단 말이야. 내 일당 네놈들이 물어 줄 거야?

-오늘 서울지방에 한 때 비가 오겠다고 어제 저녁에 예보를 했고요, 실제로 서울 북부하고 동부 지방에는 소나기가 내린 것으로 확인이 됐는데….

-뭐라고? 그럼 영등포는 서울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일 다니는 주택 공사 현장에 오늘 콘크리트 슬라브 공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네놈들이 비 온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공사를 중단했단 말이야. 그런데 오늘 하루 종일 우리 공사판에 비는 한 방울도 안 내렸어! 요런 고약한 세금 도둑놈들 같으니라고….

기상청 홍보과장 윤석환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와는 반대로 날씨가 맑겠다고 예보를 했는데 소나기가 퍼붓는 바람에 콘크리트 작업을 하다가 뒤죽박죽 돼버렸다고 공사판 업자가 울면서 따지기도 하고…. 비교적 면적이 좁은 서울에서도 이렇듯 국지적으로 일기 차이가 나타날진대, 가령 산악지대가 많은 데다 면적이 훨씬 넓은 강원도 지역의 날씨 예보는 몇 배나 더 어렵지요. 그러니 스트레스가 말이 아닙니다. 이런 불만을 줄여가는 것이 우리 기상청이 안고 있는 과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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